간만에 콘텐츠를 위한 글이 아닌, 그냥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열었는데 더럽게 드린 와이파이 때문에 네이버 창조차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메모장을 켰다. 나중에 블로그에 붙여 넣던가 해야겠다.
우연한 계기로 싱가포르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여행을 오게 되었다. 지금은 배 위고, 밤 12시를 지나간다. 태국에서 싱가포르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고 싱가포르로 가면서 1시간이 다시 빨라진다.
여기서 공연을 보고, 밥을 먹고, 액티비티를 즐겼다. 내가 가장 궁금한 건 사람이었다. 여기서 공연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다가 크루즈에서 공연을 하게 된 걸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것들이 가장 궁금했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건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겹쳐 서로를 만나게 되고, 지금 크루즈 여행을 온 진형이와 나 우리의 삶이었다.
오랜만에 같이 해외에 나오고,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이 크루즈를 타게 되니 문득 세상이 참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고민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나는 서울 시민 대다수가 하는 고민을 하고 살아간다. 내 주변 사람들이 하는 고민을 하고 살아가고, 그게 최우선이 된다. 그런데 조금만 벗어나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허무할 만큼 쉽게 깨닫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는 내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행하는 게 내 꿈인 줄 알았다. 아니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돈을 잘 버는 게 내 꿈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이제는 내 꿈이 아니다.
지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건 우리의 안전과 우리의 행복. 우리가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안전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잘 벌고 싶어서 일도 잘하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 더 행복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이 우리의 안전과 행복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지자, 다른 모든 것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은 초연해졌다.
점차적으로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 치열함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 진형이랑 안 해본 것들을 경험하고, 안 가본 곳들을 가고 싶다. SNS도 적당히 하고, 남 사는 이야기도 남들의 생각도 그만 쳐다봐야겠다.
크루즈 여행 동안 희로애락을 다 겪었다. 보내야 할 파일이 있는데, 와이파이가 느려서 하루 종일 즐기지도 못하고 그거에 신경이 곤두서있기도 했다. 체력적으로 피곤해서 진형이와 서로 예민하게 굴기도 했다. 내가 여기 오는 게 맞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침내 지금은 사소한 행복에 도달한 상태이다.
오늘 찍은 사진과 영상들 속 나를 보며 진형이는 “귀여워, 딸내미 같아”라고 말했다. 가끔 사진 속 나를 보는 진형이의 표정을 힐끔 쳐다볼 때가 있는데 그 표정을 나는 영원히 간직할 것만 같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축복이지만, 난 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걸까. 삐거덕거리고 고장 난 것 같은 삶을 고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