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00일 비건

비건, 완벽주의의 덫

by 나타미


근 열흘 간 비건으로 생활을 했다. 그동안 완벽하게 비건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다. 몰라서 먹은 것도 있었고,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먹은 것도 많았다.


몰라서 먹은 것에는 소스류, 양념류 등이 가장 많았고 또 유제품이 섞여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동생이 끓여준 된장국 된장에 육수베이스가 들어갈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음식들에 동물성 식품이 들어가고 있었다.


모르고 먹었다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비건이 되기로 마음 먹은 이후, 완벽하게 비건 생활을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 실패하고 나니 몸에도 환경에도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찝찝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의든 아니든 한 번 동물성 식품을 먹고 나니 먹어야 할 핑계는 갈수록 늘었다.


특히, 사람 사이 관계가 제일 큰 장애물이었다. 호의로 사다주는 간식들이나 밥들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비건도 좋지만 사람 사이의 마음도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니 말도 못하고 한 두 번씩 먹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완벽한 비건 생활은 처음부터 금이 간 채로 시작됐고, 의지가 꺾여갔다. 어디가서 비건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웠고, 내가 비건이라고 말한 사실이 후회가 됐다.


시작하려면 조용히 시작할 걸 왜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을까?


자책이 이어졌다.


원래, 환경을 생각하는 애도 아니었잖아. 동물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갑자기 선민의식이라도 생긴거야?


내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패배주의도 나를 괴롭혔다.


나 하나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을텐데,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나. 남들은 다 고기 잘먹고 아무렇지 않게 사는데 나 혼자 이런다고 뭐가 바뀔까.


기운이 빠졌다.


완벽주의의 덫에 갇혀 무기력에 휩쌓였다. 성분표를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요리의 요 자도 모르고 별 취미도 없던 내가 채식 도시락을 매일 싸려니 너무 벅차고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주말 내내 우울한 주말을 보냈다. 자책과 무기력에 빠져 아무 음식이나 먹으며 비건은 거의 포기하다 싶이 했다.


그래도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일어나 계획을 짰다.


천천히 조금씩 가기로 노선을 바꿨다. 완벽한 비건보다 완벽하지 않은 비건으로 길고 얇게 가고 싶었다.

처음 일주일은 육류를 제한하고, 그 다음 일주일은 육류에 유제품을 제한하고, 그 다음 일주일은 육류와 유제품, 거기에 해산물을 제하는 식으로 천천히 가야할 것 같았다.


룰을 따르되, 룰을 어겼을 때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야 건강하게 비건을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번 일주일은 육류를 제한하기로 했다.


자책하는 마음과 자기 검열의 늪은 비건을 지향하면서 필연적으로 만날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안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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