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을 지향하겠다 마음먹은 지 한 달 가까이 돼 간다. 그간 비건이라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식생활을 꼼꼼히 챙기지 못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 직장에 도시락도 싸가는 열정을 보일 정도로 열심을 냈지만, 일주일도 채 가지 못했다. 요리도 싫어하고 원체 게으른 성질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다음 일주일부터는 조금 널널하게 육류 먹지 않기, 유제품 먹지 않기 , 계란 먹지 않기 등의 작은 목표들을 세워 지켜가기 시작했다. 아마 어렸을 때 이후로 가장 고기를 먹지 않은 시기를 보냈을 거다.
처음 일주일 비건을 하기 힘든 이유는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였고, 도시락을 싸기 번거 로워서였다. 10일 정도가 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 비건을 시작한 이유가 희미해져 갔다. 100일 챌린지로 시작해보자 마음먹었던 비건은 그 기간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로 천천히 생각해보면 비건을 지향하는 게 옳은 길이었다. 절벽 끝에 서있는 환경 문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서라도, 잔인하게 도살당하는 생명들을 생각해서라도,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비건을 안 할 이유는 역시 없었다.
하지만, 내가 비건을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텀블러 사용하는 것조차 매일 까먹어 플라스틱 컵을 쓰면서 내가 환경을 논할 자격이나 있나?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죽음까지 생각할 만큼 깨어 있는 사람이었던가?
아니, 애초에 내가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기나 했었단 말인가?
인류야 언제 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인데. 내일 지구에 종말이 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인데. 그런 내가 눈 앞에서 벌어지지 않는 살육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미래의 인류와 지구 전체를 위해 환경을 위한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었다.
애초에 나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고, 가지고 있는 애정의 양도 적은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했다.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에서는 연결성을 강조한다. 비건은 결국 이 땅의 모든 생명들과의 연결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삶이 얼마나 파편화되어있나.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단절되고 고립된 일상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지만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드물다. 혐오는 짙어지고 이해는 좁아진다. 이런 사회에서 나는 마음속 남아있는 작은 측은지심도, 양심도, 공감 능력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나조차도 사랑하지 않았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니 비건을 지향한 지 얼마 안 되어 첫 마음을 잃어버린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 마음에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적극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비건이 좀 더 쉬운 일이었을까?
벽을 허물고 내 안에서 벗어나 타인과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다. 비건은 내가 속한 세상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이 부족하기에 비건이 아직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