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00일 비건

비건이 되면서 소수자가 되었다

by 나타미


비건을 지향하게 되면서 정체성이 하나 더 생겼다. 여자, 이성애자, 아시아인 등 나를 규정하고 있는 것들에 비건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이 추가된 것이다. 나를 규정하는 많은 것들이 내 선택 밖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비건은 오로지 내 선택으로 이뤄진 것이다.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면서 일상 속에서 접하지 못한 국면을 맞이했다. 비건이 되면서 거의 처음으로 사회에서 소수자가 되었다. 여자여서 겪는 혐오와 차별들은 늘 있어왔지만 그것은 사회적 약자로서였지 소수자로서는 아니었다. 비장애인이었으므로 어디를 가든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 있었고, 이성애자였으니 차별의 시선 없이 연애를 즐길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모두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한국인이었으므로 다름에 대한 외로움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비건이 되니 소수자여서 겪는 는 불편들이 일상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일단은 내가 실질적으로 겪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비건 식당을 기나긴 검색 끝에 한참을 걸어가야 하고, 국물에 무슨 육수가 쓰였는지 하나하나 물어야 하고, 구내식당에서 김치에 밥만 먹어야 하는 것 같은 실질적은 불편함들. 특별한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먹을 걸로 불편함을 겪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끼 한 끼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태산같이 늘어나다니.


하지만 이런 실질적인 불편함보다 어려운 것은 비건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들이다. 비건을 한다고 말했을 때 가깝지도 않은 타인에게 "왜, 갑자기 네가 먹는 동물들이 불쌍해졌어?"와 같은 비꼬는 말을 들어야 했다. 비건은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남들을 비난한다거나, 감성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이유 없는 편견까지 감당해야 한다.


논 비건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설명해주면 되지 않나 싶지만, 설명해야 하는 쪽은 결국 약자이고 이해가 필요한 쪽도 결국 약자이다.


사실 비건을 지향한다 한 이유로 편견의 시선을 받은 적보다 배려를 받은 적이 훨씬 많다.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고, 대기업에서도 비건 식품을 출시하는 등 비건에 대한 장벽이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진 건 사실이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대부분 "대단하다", "응원한다" 등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추석 때 엄마는 나를 위해 고기 없이 야채로 전을 부치고, 나물 위주의 밥상을 만들어주셨다. 친구들은 자기들이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비건 식당을 같이 가고, 비건 디저트를 함께 먹었다.


하지만 모든 소수자들이 받는 배려와 마찬가지로 배려는 고마운 일이지만, 제도화가 되지 않는 배려는 개인적인 일에 그칠 뿐이다. 나는 나의 선택으로 비건이 되었다. 하지만 선택이 아닌 것으로 소수자가 되고, 차별과 혐오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떠할까. 그들을 일상을 짐작하고 상상하는 건 오만한 일이다.


어떠한 형태의 소수자들이든 모든 소수자들이 존중받길 원한다. 그 존중이 당연한 세상이 오길 원한다. 혐오와 차별이 일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법적인 제도를 원한다.


비건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의 인권을 생각하게 된다. 비건은 하루에 세 번 매 끼니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한다. 비건은 나의 새로운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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