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거리

산티아고 순례길 <론세스바에스에서 주비리2> 8월 8일(수)

by 나타미

닐과 리오, 그리고 이탈리아 부부와 함께 걷다 주비리에 도착할 때쯤에는 혼자 걸었다. 임신 중인 리오가 쉬고 싶다 해서 난 먼저 가기로 했다. 순례길 초반은 대체로 산과 숲을 지난다. 여름의 순례길은 푸르렀다. 앞에서 젊은 남녀 4명이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걷고 있었다. 아델 노래도 부르고, 겨울 왕국 노래도 부르고. 뒤에서 앵콜이라고 외칠 뻔했다.


주비리는 사랑


주비리는 많은 마을 중에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여름의 순례길에는 수영복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주비리도 수영복이 필요한 마을 중 하나였다. 계곡이 흐르는 작은 시골 마을. 날은 청량했다. 카페에서 추천받은 알베르게에 갈 생각이었다. 마을 입구 다리를 건너는 데 한국 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이 나를 쳐다봤다.


서로 한국 사람인가 하고 쳐다보다 인사를 했다. 아까 길을 걸을 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지나가서 기억에 남았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던 한국인 C는 나보고 같이 알베르게에 가자고 했다. 같이 내가 찾아본 알베르게에 갔다.


가서 체크인을 기다리는 데 닐과 리오도 왔다. 둘이 약간 다퉜는지 분위기가 쌔 했다. 체크인을 하고 씻고 나오는데 한국인 아저씨 Y가 내 바로 윗 침대에 와 있었다.


알베르게 체크인 후, 본격적인 순례 길이 시작됐다. 반나절은 걷고 알베르게에 와서 씻고 빨래를 하고 하염없이 여유를 즐기는 순례자의 하루. 이 단순하고 규칙적인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8월 스페인의 햇살은 뜨거웠다. 뜨겁다기보단 따가울 정도다. 덕분에 빨래가 정말 기분 좋게 바짝 마른다. 빨래를 널고 알베르게 뒷마당에 앉아 있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여유라는 단어가 살아 숨 쉬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 그늘 밑에만 있으면 시원하고 기분 좋은 날씨에 마음도 몸도 말랑해지는 것 같았다.


1533748095843.jpg 오래 오래 기억에 남는 마을, 주비리


C와 같이 마을을 구경했다.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사진을 잘 찍는다. 외국 사람들이 찍어준 사진에 나는 거의 3등신이다. 다리 밑에 흐르는 계곡에서는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계곡에 발을 담갔다. 유럽에만 있다는 납작 복숭아와 간식을 사고, 약국도 갔다. 아직까지는 신기하기만 한 유럽의 집들. 창가에 핀 꽃들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주비리 중심에 있는 식당에서 샹그리아와 피자 등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첫 물집 제거 수술


Y 아저씨가 와서 우리에게 물집이 생기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안 생겼다고 말했는데, 알베르게 들어가서 확인해 보니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혔었다. C도 물집이 생겼다. 첫 물집이었다. C와 알베르게에서 물집 제거 수술을 들어갔다. 서로 만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사이라 발을 보여주기도 민망했다. 서로 해줄까 하다 결국 각자 알아서 했다. 알콜스왑으로 바늘과 실을 소독하고 발도 닦았다. 그리고 바늘에 실을 묶어 물집을 통과시킨다. 엄살은 집안 내력인가 보다. 도저히 못하겠는 거다. 하-.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냥 했다. 작은 물집이라 아프지는 않았지만 알콜 스왑 때문인지 따끔거렸다. 그때는 몰랐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많이 물집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고생할지.


사람과의 거리


C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나중에는 친해져서 티격태격 대며 걸었지만 초반에는 길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할지 몰랐다.


한국에서도 산티아고에서도 나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과 가까워지는 걸 무서워해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편이었다. Y 아저씨와 C와 저녁을 함께 먹었다. 무슨 말을 하고,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보여야 하는 거지. 잘 모르겠다.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사람이 만나고 싶기도 했다. 여기나 저기나 사람 대하는 게 제일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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