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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죽음이었다. 죽음은 모두에게 예견돼 있지만 나이와 질병을 고려하면 보다 정확한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 의사들이 올해를 넘기기 힘들다고 말했을 때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했지만 아니었다. 그동안 할아버지의 병을 잘못 진단해온 의사들이 죽음의 시기만큼은 얼추 비슷하게 예견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갑작스럽지 않았고, 집안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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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있을 때 "얼른 가쇼, 얼른 가쇼"라고 말했다 한다. 생의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던 할아버지의 표정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한다. 할머니는 그 표정을 보며 얼른 가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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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의외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밥이다. 특히나 시골 어르신들에는 더욱 중요하다. 반찬이 잘 나오기로 한 번 입소문을 타면 장례식 맛집으로 지역에서 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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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는 고인의 이름과 밑에 자식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화면이 떠있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순이다. 아들이 딸 앞에 오는 건 오랜 가부장적 문화기 때문에 일단 그러려니 하고, 며느리가 딸 앞에 오는 건 왜인지 궁금했다. 발인을 하러 가족들이 두 줄로 서서 이동할 때도 여자 중에서는 첫째 며느리가 제일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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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 내내 둘째 고모부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바쁘고 정신없는 상주를 도와 음식 양을 체크하고, 손님을 안내하고, 장례식 업체와의 정산을 깔끔하게 해냈다. 친척들은 사람이 참 성실하고 꼼꼼하다며 틈만 나면 칭찬을 했다. 나는 우리 엄마가 명절 때마다 음식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병문안을 가도 칭찬을 들은 기억은 없다. 사람이 부지런하고 바르다는 소리 같은 건 없었다. 엄마는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일 뿐이며, 고모부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잘 해낸 사람이었다. 며느리와 사위는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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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할머니 슬하에는 다섯 남매가 있다. 그중 막내 고모만 나머지 네 형제와 성이 다르다. 할머니가 사별 후 재혼을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막내 고모가 나랑 성이 다르단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핏줄이 섞인 자식은 막내 고모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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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을 하기 위해 지하 일층으로 내려갔다. CSI에 나오는 영안실 같은 차가운 분위기를 생각했는데, 전혀 그 반대였다. 스피커에서는 어버이 은혜 노래가 은은하게 나오고 있었고, 조명은 밝으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장례지도사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유족들의 심정을 한껏 이해하는 목소리였다. 장례지도사는 할아버지 다리의 염증과 등 뒤의 상처를 깨끗하게 닦았다고 말해줬다. 할아버지가 있는 방은 커튼이 쳐져 있었다. 그 안으로 상주인 아버지가 먼저 들어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알 수 없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라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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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할아버지를 보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얼굴은 흰 천에 가려져 있었다. 장례지도사는 흰 천을 걷어 올리고 유족들끼리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을 줬다. 할아버지 얼굴을 그렇게 오래 쳐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아는 할아버지는 말씀이 많이 없으셨다.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던 모습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할아버지 얼굴은 평화로웠다. 암 말기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별로 느끼지 못해 모두가 다행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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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던 막내 고모와 할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만지며 미안했다고, 사랑했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또 할머니는 아팠던 할아버지의 다리를 계속해서 주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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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관에 들어갔다. 장례지도사 두 명이 와서 매우 전문적인 솜씨로 할아버지 밑에 끈을 넣은 다음 남자 가족들과 함께 할아버지를 관에 모셨다. 할아버지가 풍채가 크단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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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을 마치고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 보니 할머니가 먼저 손을 씻고 있었다. 할머니는 펑펑 울면서 손을 비누로 빡빡 닦고 있었다. 엉-엉-엉- 할머니는 울고 있었고, 물은 쪼르르 나와 할머니의 손을 닦았다. 할머니는 울면서도 꼼꼼하게 비누칠을 했고, 티슈로 물기를 제거했다. 그리고 나를 보고 말했다. "죽은 사람 보고 왔으니 마스크 갈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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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드문드문 오는 장례식장은 무료함과의 싸움이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어떻게 할아버지와 만났냐고 물었고, 할머니의 얘기는 삼천포로 빠져 작은 아빠가 어린 시절 사고를 쳐 법정에 간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작은 아빠가 다행히 감옥은 가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이후 아빠에게 물어보니 "무슨 소리야 내가 면회까지 갔는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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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고모와 결혼할 사람이 장례식장에 왔다. 장례식장은 곧바로 청문회로 변해 직업이 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냐 등 질문 폭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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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장을 치를 동안에는 슬퍼할 겨를이 없다. 바쁘고 피곤하다. 잠도 제대로 못 잔다. 감정적으로 슬프기보다 몸이 피곤하게 먼저가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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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인 아빠는 굳이 굳이 좁은 장례식장 방에서 우리 다섯 식구가 다 자자고 했다. 엄마는 아빠를 내쫓으려 했지만 아빠는 엄마 옆에 있고 싶다고, 딸들 옆에 있고 싶다고 우겨 결국 다섯 명이 같이 잤다. 아빠, 엄마, 나, 둘째, 막내. 새벽에 말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빠, 엄마, 둘째가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득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을 마음 놓고 즐기기엔 과거의 기억들이 너무 많았다. 이 행복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지금까지의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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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은 때론 지루하게, 때론 빨리 흘렀다. 화장터 앞 대기실에서 아주 깊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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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함을 작은 구멍을 통해 화장터 안쪽으로 전달해주면 유골을 담아 준다. 문득 든 생각. 유골이 다른 사람 유골이랑 바뀌면 어쩌지. 저 안에 유골이 아니라 다른 게 들어 있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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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 간 날씨는 매우 청량했다. 파란 겨울 하늘에 추모공원 풍경은 아름다웠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겨울 날씨였다. 귀여운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이목을 집중시켰다. 추모공원은 꽃들로 가득했다. 스산한 기운 하나 없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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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때 엄마 아빠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나와 둘째 동생은 친할머니 댁으로 가 몇 달을 보냈다. 그때도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는 어려웠다. 어려서 낯가림도 심했다. 나는 그때 문방구에서 파는 인형 옷 입히기 스티커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돈이 필요했다. 종이에 "할아버지 500원만 주세요"라고 적어 종이비행기를 접어 할아버지한테 날렸다. 직접 말하기도, 쪽지를 직접 전달하기도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 종이비행기를 받은 할아버지의 표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아 문방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