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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미 Oct 29. 2020

네 생각만 하면 졸음이 밀려와


가끔은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가끔은 잠을 너무 많이 잤다. 잠을 굶고 폭식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느 쪽도 좋지는 않았다. 잠을 적게 자는 것도, 잠을 많이 자는 것도 슬픔의 증후였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순간 잠은 내게서 도망치거나 허락 없이 침입했다.


모든 것이 선명해져서, 특히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이 선명해질 때는 잠이 오지 않았다. 괴로운 생각이 울음으로 나오지 않을 때 잠을 자지 못했다. 침대 위에서 온 우주가 내리는 형벌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울음이 터질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울고 나면 편히 잘 수 있었다. 우는 순간은 세상 모든 것이 끝나는 느낌이지만 울고 나면 후련하니 그보다 나은 것도 없다.


슬픔은 나를 계속해서 깨우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재우기도 했다. 슬픔은 다정한 유모의 얼굴을 하고 나를 재웠다. 그 유모는 어찌나 다정하고 나를 아끼는지 슬픔이 찾아올라치면 잽싸게 잠을 재웠다. 밤이고 낮이고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꾸벅꾸벅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여러 꿈을 꾸기도 했다. 꿈이라서 안도하게 되는 꿈들, 꿈이라서 아쉬운 꿈들 등 다양했지만 대부분의 꿈들은 현실보다 나았다. 현실보다 재밌었고, 풍요로웠다. 나는 꿈에서 꿈인걸 알아차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꿈의 각본을 마음대로 짜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꿈속에서 미남들에게 키스를 퍼붓기도 하고, 최고의 저격수가 되기도 하고, 실수를 되감기 해 내가 원하는 결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자는 시간은 참 포근한 겨울 이불과도 같았지만 언젠가는 현실로 복귀해야만 했다. 잠이 몰려올 때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몰려왔다. 잠 이외의 다른 해결책은 찾지 못할 때 나는 계속해서 잠으로 회피했다. 슬픔을 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지도 않았다. 잠이 내게로 왔다. 슬퍼지려 하면 잠이 왔다.


요 며칠은 하나의 생각이 나를 잠으로 이끈다. 어떤 한 사람을 떠올리면 잠이 오기 시작한다. 생각하기가 무섭게 졸음이 밀려온다. 그 사람은 나를 졸리게 만든다. 한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은 더디게만 흐른다. 잠은 시간을 접어준다. 기다리는 시간도, 생각하는 시간도 접어준다. 잠을 자면 시간이 사라지니 또다시 잠을 잔다.


그 한 사람은 나를 모른다. 나를 모르고 나의 마음을 모른다. 그 사람은 미안하다 말했다. 미안하다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그에 대해 수많은 문장을 기록할 수 있지만, 그는 나에 대해 몇 개의 단어도 읊지 못한다. 마음의 간극을 견뎌야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그래서 잠이 쏟아진다. 어제도 오늘도 자고만 싶다. 긴 잠이, 긴 꿈이 나를 달래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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