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타미 Dec 15. 2020

가끔 우리 가족은 화목한 모습으로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상복을 입은 상주의 다섯 식구는 좁은 장례식장 가족실에 옹기종기 누워 잠을 잤다. 여자는 남자에게 다른 방으로 옮기라 말했지만, 남자는 나이에 맞지 않은 투정을 부리며 여자 옆에 누웠다. 나는 벽을 마주하고 누웠다. 모서리가 나를 편하게 했다. 늦은 새벽 까무러치듯 잠에 들고, 이른 새벽 소리에 눈을 떴다. 여자와, 남자와, 두 살 아래 둘째의 말소리. 작은 새들이 지저귀듯 조용한 그들의 음성은 요람 같았다. 아주 어릴 적, 잘 때 숨을 쉬지 않는다고 믿었을 때, 여자와 남자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첫째와 둘째와 막내의 이마에 손을 얻고 기도를 했다. 중얼거리는 기도는 자장가 같았고, 나는 모든 기도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일부러 숨을 쉬지 않았다. 여자와 남자는 첫째인 내 이마에 가장 많이 손을 올렸다. 장례식장 새벽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남모르게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잠이 많은 막내는 그들의 대화에도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꼼짝 않은 채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그들의 대화는 따뜻해서 낯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낯설게도 따뜻한 말소리가 잦아졌다.


남자와 여자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차곡차곡 죄를 지었다. 그건 나를 향한 죄였고, 우리를 향한 죄였다. 남자와 여자는 많이 다퉜고 나는 우는 동생들을 모른 채 했다. 아이는 잊지 못했고, 어른은 용서하지 못했다. 많은 것들이 세월 앞에 무뎌진 것처럼 보이나 어린아이는 생생히 살아있다. 그렇게 믿고 살았다.


나도 모른 채 나는 변했다. 남자도 여자도 변했고 다섯 명의 관계 또한 변했다. 하지만 아이는 죽지 않았으니 새벽의 새벽 같은 대화는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느껴지는 평화가 두려워 나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포근한 웃음소리가 겁이나 홀로 있는 것을 택했다. 다섯 명이 하나의 가족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경계했다.


그런데 가끔은 기억 속 가족들이 모두 사라지고 새 가족이 태어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새벽기도와 같은 순간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가끔은 그렇게나 화목하다. 기억과 실제가 다르고,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본능과 상처 받기를 거부하는 본능이 부딪혀 당혹한다. 가끔 우리 가족은 정말로 화목해서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다행히 죽고 싶지 않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