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타미 Dec 17. 2020

나보다 뚱뚱한 사람이 없다: 폴댄스 입문기


폴댄스 수업을 나간 지 10회 차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아주 중요하고도 아주 의미 없는 사실을 하나 알아냈다. 바로 이 학원에서 나보다 뚱뚱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부적절하게 온 몸을 하나씩 뜯어서 설명하자면 나보다 뱃살이 출렁거리는 사람도, 나보다 허벅지가 굵은 사람도 없었다. 거짓말을 약간 보태기는 했다. 하지만 10중 9는 확실히 나보다 말랐다.


163cm에 63kg에서 65kg의 나는 밖에서는 몰라도 폴댄스 학원에서만큼은 통통한, 혹은 뚱뚱한 사람이다. 아니, 아마 밖에서도 그럴 것이다. 살과의 마찰을 이용해야 하기에 폴댄스의 특성상 의상이 노출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원 벽은 온통 크고 깨끗한 거울로 둘러싸여 있다. 덕분에 나는 하얀 조명 아래서 내 몸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내 몸만 바라봤으면 괜찮다. 문제는 내 몸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몸도 바라보게 되고, 다른 수강생들의 몸도 바라보게 되었다.


이 대한민국 사회는 어떻게 된 것인지 마른 여자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길거리만 돌아다녀도 죄다 마른 것 같은데, 폴댄스 학원에서는 더하다. 혹시 나보다 뚱뚱한 사람은 입장을 못하게 제한이라도 걸어 둔 걸까.


어쩔 수 없이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다들 자기 운동하느라 바쁘다고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눈을 돌려 다른 사람의 몸매를 바라보고 나 자신과 비교하고 있었다. 마른 사람들 틈에서 그 날 폴도 제대로 안 타지면 자괴감은 더하다. 내가 뚱뚱해서 폴을 못 타나?


운동을 하면 이름은 까먹은 어떤 좋은 호르몬이 나와 기분이 좋아진다는데 폴댄스 학원에서 나오는 길은 항상 주눅 들어 있었다. 폴댄스를 하기 위해 살을 빼고 싶었다. 같은 동작을 해도 태가 다르고, 몸무게가 가벼워야 폴을 타기 더 수월하다는 말은 나를 향한 속절없는 거짓말이었다.


그냥 예뻐 보이고 싶었다. 예쁜 의상을 입고 예쁜 몸매를 뽐내고 예쁜 모습으로 폴을 타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운동이 재밌지 않았다. 매 폴댄스 수업 시간마다 나를 코르셋으로 조이는 기분이었다. 웜업 운동을 하며 다른 마른 수강생들의 모습을 훔쳐봤다. 폴댄스를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말랐다는 사실 이외 한 가지 더 발견한 게 있다. 사람들의 몸은 그들의 얼굴만큼 다채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채로운 외형의 몸을 가지고 하나의 생각을 주입받았다. 더 마르게, 더 날씬하게. 날씬하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야. 섹슈얼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여자도 아니야. 나는 내가 부러워하는 다른 날씬한 수강생들이 저들의 마른 모습에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매일 같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중얼거리고, 다이어트 제품을 알아보고, 심하면 효과 좋다는 다이어트 주사를 스스로에게 놓고 있을 것이다.


자괴감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뚱뚱해서 자괴감을 느끼는 게 아니다. 거울 앞에 선 많은 여자들은 자괴감을 받도록 훈련돼 있다. 나는 그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여자들은 손목, 발목, 종아리, 허벅지, 골반, 허리, 가슴, 어깨선, 목 라인 등을 시선으로 분해당하고 판단당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었을 뿐이다.


내 몸에 자괴감이 들고 비교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단순히 내가 자존감을 높이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love yourself'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 여자의 몸에 대한 평가가 사라져야 한다. 근육질의 여자, 살집이 있는 여자, 덩치가 큰 여자 등 여러 모습의 여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상적인 몸매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폴댄스를 하면서 깨달은 게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페미니즘에 대해, 사회가 여자들에게 강요하는 코르셋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거울 앞에 선 나는 여전히 다이어트와 몸매에 대한 강박에 시달렸고, 예뻐 보이고 싶다는 욕망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만큼 사회적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고, 어릴 때부터 세뇌되어온 '예쁜 여자'에 대한 집착은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보내는 박수에 있다. 우리는 거울을 등지고 서로를 바라보고 박수를 보낸다. 입기 싫어도 입는 코르셋에 허리가 꺾여도, 거울을 보고 자괴감에 어깨가 축 늘어져도, 먹는 것 하나하나 칼로리를 계산하는 다이어트 강박증에 시달려도 서로에게 박수를 친다. 몸이 어떻게 생겼든 간에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박수를 보낸다.


폴을 잡은 여자들을 각기 다른 곡선과 각기 다른 형태를 그리며 하늘을 난다. 우리는 다른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박수 소리는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 우리 가족은 화목한 모습으로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