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보니 길어져서 #1
28살.
만으로 27살의 나이에 진실이랑 결혼했다.
만나서 연애한지는 그때도 벌써 5년인가 된 마당이었으니 생의 반려라 해도 족하리라.
하여간 갑자기 날이 더워 그런가 걷다가 그때 생각이 났다.
신혼집은 건대 입구역 근처에 있는 아파트였다.
전세 2억5천짜리 집이었는데, 지금 보면 너무 싸다 싶겠지만 그때는 너무나 비싸게 느껴졌다.(객관적으로는 저 가격도 쉽지 않은 거 맞다) 예산이 빠듯해서, 스마트 티비를 못 사고 그냥 티비를 샀던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걸 가지고 넷플릭스 보겠다고 낑낑 대다가 포기했던 기억도 나고.
그렇게 둘이 알콩달콩 잘 살다가 결혼한지 2년 만에 첫째가 태어났다. 그때까지는 진실이가 학생 때부터 타던, 연식은 20년이 안되었는데 타보면 50년은 되어 보이는 산타페를 탔다. 방지턱 넘어갈 때마다 라디오가 켜졌다 꺼졌다 해서 웃기긴 했지만 아기를 태우기에는 좀 무리였다. 차를 바꾸기로 했다.
난 티구안이 갖고 싶었다.
차를 잘 알아서는 아니었고, 그냥 누가 자랑했는데 부러워서 그랬다. 알아보니 자랑할만한 차였다. 튼튼하고, 잘 나가고 무엇보다 외제차라 비쌌다. 예산을 무려 천만원 이상 웃돌았다.
타협을 잘하는 편이라 바로 산타페로 고개를 돌렸다.
기능도 좋고, 내장 좋고 무엇보다 중고차 가격 방어가 아주 잘되는 차량이었다. 예산도 딱 맞았다.
결국, 산 건 쉐보레의 캡티바 차량이었다.
내 의지로 산 건 아니었다. 아빠가 교회 집사님 도와줘야 된다고 해서 샀다.(집사님은 내가 차를 산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쉐보레를 퇴사했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워낙에 후진 차를 몰던 마당이라 우리는 금세 적을할 수 있었다. 일단 라디오 대신 블루투스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후방 카메라도 달렸고.(삐뚤게 달려서 처음 모는 사람은 안 보는게 낫지만)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군대를 갔다. 나이 31살에 가는 군대는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었다. 훈련소 입구에서 자기야가 아니라 여보라는 말이 들리고, 간간히 아빠 어디가 라는 말도 들렸다. 예능으로 보는 아빠 어디가는 재밌지만 훈련소 앞에서 보는 아빠 어디가는 구슬펐다.
그래서일까. 훈련소에 있던 모두는 (장군님 제외) 우리에게 굉장히 잘해주었다. 우선 존대말을 썼다. 중령님도 소령님도 조교들도 다. 훈련에 있어서도 배려를 해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괴산 군사학교는 시설도 괜찮은 편이라 각기 침대에서 잘 수 있었고 따뜻한 물도 잘 나왔다.
근데 힘들었다. 엄살 부리는게 아니라 다치는 친구들이 많았다. 5년 동안 병원 생활하느라 몸이 곯아서일까? 심지어 발목이 부러져서 퇴소 처리 되는 친구도 있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내 옆자리에서 자던, 그러니까 같은 분대 전우는 허리가 부러졌다. 원래 같았으면 얘도 퇴소 였을 텐데, 군의관은 다 각기 부임할 자리가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결국, 전우는 들것에 실린 채 훈련을 참관하는 것으로 훈련을 마쳐야만 했다.
그렇게 한달인가 훈련을 받다가 외박을 받아 집에 갔더니, 나올 떄는 누워 지내던 딸 아이가 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눈에 내 딸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지만 딸 애는 내가 머리를 밀어서 그런가 아니면 군복을 입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알아보지 못하고 울었다. 나도 속으로 울었다. 딸이 아빠를 못알아본다는 건 좀 슬픈 일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하여간 진실이는 오랜만에 사회에 나온 나를 데리고 워커힐 호텔에 갔다. 숙박은 비싸서 언강생심이었고, 거기 있는 피자를 사 먹었다. 맛있었다. 초코파이가 만찬이었던 시절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때 진실이가 오래되서 삭은 내 코트를 말하면서 울었다 했다. 그래서 나는 새 옷이라도 샀나 했는데, 결국, 산 것은 자기 옷이었다. 어차피 나는 군인이라 당분간은 새 옷이 필요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 라고 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가슴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현재형으로 쓴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아 줬으면 좋겠다)
-2편에서 계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