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이라 믿었던 길, 어머니의 마음

나를 찾는 여정 02: 내 꿈이 아니었던 꿈의 무게

by 낙천지명

고시원에서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가'를 물었던 첫날 이후,

나는 상담 공부를 시작했던 또 다른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상담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깨달음은 의외로 단순했다.

남을 이해하기 전에, 상담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스스로를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의 지도는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채 살아왔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공부는 자연스럽게 나를 안쪽으로 깊숙이 데려갔다.

이론보다 내 감정이 먼저 반응했고, 사례보다 내 과거의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다.

상담을 배우는 시간은 곧 내 안에 묻어두었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남들의 프레임 안의 나

겉으로 비친 나는 꽤 안정적이었다.

집에서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필요 없는 모범적인 아들이었고,

당시 남들이 부러워하는 교사를 25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시작하여

학교에서는 열심히 가르치고 잘 지도하는 교사로 인정받았다.

주변의 시선은 나를 훌륭한 사람, 성실한 교사라는 견고한 프레임 안에 가두었다.

문제는 그 모든 모습이 남들이 바라는 나였다는 점이다.

그 안에 있는 '내가 진짜 원하는 나'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상담 공부를 통해 천천히 과거를 되짚다 보니,

내가 오랫동안 내 꿈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교사의 모습이 사실은 어머니의 꿈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의 삶이 남긴 무거운 흔적

어머니의 삶은 늘 아쉬움과 버거움으로 가득했다.

전쟁통에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둘째였던 어머니는 일찍부터 가족의 짐을 짊어져야 했다.

국민학교 입학이 늦었고, 사범학교에 몰래 입학했다가

외할머니의 반대로 끌려 나와야 했던 꿈의 좌절은 평생의 응어리로 남았다.

“나보다 공부 못하던 애들이 다 선생이 됐잖아.”

어머니의 이 말씀 안에는 단순한 비교를 넘어,

살아오며 미처 펼치지 못한 삶의 주름과 염원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집 밖에서만 좋은 사람이었던 아버지의 부재는 나에게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고 잘 살아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을 일찍부터 안겼다.

형을 공부시키기 위해 도시의 친척집으로 보내야 했던 선택 이후,

어머니의 기대는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옮겨왔다.

그 기대는 따뜻한 응원이었고, 동시에 내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었다.


즐거움의 뿌리를 캐묻다

나는 수학을 좋아했고, 잘했고, 그 기대를 따라 교사가 되는 길을 자연스럽게 선택했다.

그 선택이 전혀 의심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확신에 가까웠다.

편입학을 결심했을 때,
지방 국립대 교수님은 전액 장학금까지 언급하며 만류하셨다.
“더 공부해서 교수의 길을 가보는 건 어떻겠나”라는 말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그릇은 아닙니다.

교사로 사는 삶이 제게 맞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수업이든 생활지도든 맡겨진 일에 몰입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상담 공부는 그 즐거움의 뿌리를 다시 캐묻게 했다.

그 즐거움은 '교사'라는 직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일이든 책임감을 가지고 해내려는 내 성향 때문이었을까?

곰곰이 돌아보니 답은 후자에 가까웠다.

내게 주어진 일이 우연히 교직이었을 뿐,

나는 어디에 있었든 비슷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괴로웠다.

내 선택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그 길이 온전히 내 것만은 아니었음을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질문을 향해

그 깨달음 이후로, 나는 직업의 이름표보다 내 안의 성향을 보기 시작했다.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글에서는 성격검사와 진로적성검사의 결과에 따른 나의 분석과,

그 성향이 학교 안에서 내가 행정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이유를 더 솔직하게 풀어보려 한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 삶은 살아진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남의 기대와 책임감 속에서 충실히 살아졌던 삶.

그제야 나는, 내 삶의 지도를 펼쳐 들고 비로소 내 길을 찾기 시작하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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