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첫날, 내게 던진 정직한 질문

나를 찾는 여정 01: 답을 찾는 것보다, 질문을 정직하게 붙잡다.

by 낙천지명

고시원에 앉은 첫날,
짐을 풀고 작은 책상 앞에 앉자, 방 안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서울로 올라오면 바로 공부가 시작될 줄 알았는데,
정작 첫날에 나는 책만 펼치고 책장을 넘기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그때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정말 전문상담교사가 되기 위해 이곳에 온 걸까.
아니면 사표를 쓰고도, 여전히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끈을 놓지 못해 이 길을 택한 걸까.

그 질문은 생각보다 깊었다.
답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또렷하게 마음에 남았다.


상담을 공부하며 알게 된 것

교직을 내려놓기 전까지 나는 상담을 공부하고 있었다.
처음엔 분명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출발점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데 공부를 계속할수록 방향이 달라졌다.
상담은 타인을 분석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게 만드는 학문이었다.

이론과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자신에 대해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 상담을 직업으로 삼기에는 부족했다.
봉사라면 가능했지만,
돈을 받고 책임져야 하는 일로서는 준비가 모자랐다.

우리나라 상담의 현실도 냉정하게 보였다.
학벌, 학회 활동, 임상 경력이라는 조건 앞에서
나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미술치료를 공부하다 멈춘 것도 같은 이유였다.
흥미는 있었지만, 나의 성향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

다만 MBTI나 MMPI 같은 검사 도구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일에는 소질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상담가가 될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피하고 있던 질문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이 고시원에 앉아 있는 이유가
전문상담교사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시 사회 분위기 역시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는 선택은 여전히 모험이었다.
서른 중반을 지나며, 선택에는 늘 ‘책임’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그래서 나 역시 명분 뒤에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상담교사를 준비한다”는 말로
내가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을 미뤄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왕 멈춘 김에, 제대로 멈춰 보자고.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부터 다시 묻자고.


질문이 방향이 되다

그 이후로 시간의 결이 달라졌다.
고시원은 시험 준비 공간이 아니라
나를 탐색하는 방이 되었다.

아직 계획은 없지만, 질문은 분명해졌다.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갈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때 떠올랐던 말이 있다.
칼 융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낼 때, 비로소 인생은 시작된다.”

고시원 첫날의 질문은
나를 주저앉히기 위한 의문이 아니었다.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
‘누구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묻기 시작했다.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글은 결론이 아니다.
아직 아무것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의 기록이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나는 더 이상 도망치듯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그리고 나를 향한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 보기로 했다는 것.

‘나를 찾는 여정’은 그렇게,
아주 조용한 방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