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정 05: 출가라는 이름의 방황
처음엔 그저 '쉼'이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연습이 필요해서 절을 찾았다.
불안을 잠재우려 애쓰고 있던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툭하고 뜻밖의 말씀을 던졌다.
“처사님은 출가할 것 같아요. 이왕이면 빨리 하세요.”
가볍게 던진 농담 같았지만, 그 말은 잔잔하던 내 마음의 호수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
잊고 지냈던 오랜 기억, 가톨릭 사제를 꿈꿨으나 끝내 용기 내지 못했던 과거의 부채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엔 그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붙잡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막연했지만 선뜻 그러자고 답했다.
주지 스님은 긴 침묵 끝에 내 머리를 직접 깎아주셨다.
삭발과 함께 행자로서의 삶이 시작된 첫날밤 나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불안이 온몸을 잠식했다.
결국 새벽녘 나는 죄송함을 담은 편지 한 통만 남긴 채 도망치듯 절을 내려왔다.
하지만 방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에게 출가를 권했던 스님의 소개로 다른 절을 찾았다.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다음 날 바로 내려왔다.
이후에도 '제대로 된 출가는 해인사다'는 말에 다시 길을 나섰지만, 그곳에서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세 번의 시도 그리고 세 번의 도망.
나는 도대체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승려로서의 삶이 주는 무게였을까, 아니면 또다시 선택 앞에서 도망치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었을까.
돌고 돌아 결국 처음 머리를 깎았던 사찰로 돌아갔다.
그때서야 주지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땐 때가 아니었어요. 아직 불안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죠. 지금은 한번 해볼 수 있겠네요."
스님은 다시 내 머리를 깎아주셨고 이번에는 몇 달을 버텼다.
나름의 단련을 거쳐 강원도의 큰 절로 공부를 하러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결국 또 짐을 싸서 내려오고 말았다.
이 지독한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월정사의 단기출가학교를 찾았다.
이번엔 목적이 달랐다. 출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 안에 질척하게 남아있는 출가 아니 성직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기 위해서였다.
한 달의 프로그램을 마친 마지막 날 연락처를 나누자는 사람들에게 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곳의 경험은 고스란히 여기 내려놓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연락처 하나 남기지 않고 산문을 나섰다.
정말 길고 소란스러운 방황의 시간이었다.
삭발만 여러 번 반복한 이 시간 끝에 내가 찾은 명확한 답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해진 것이 하나 남았다. '출가'는 내 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 모든 소동은 젊은 날 이루지 못했던 가톨릭 사제의 꿈에 대한 뒤늦은 대리 만족이자 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위로하자 더 이상 미련은 남지 않았다.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방에 머무르지 못하는 데서 온다.”
나는 쉼을 찾아 들어간 그 고요한 방에서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와 맞지 않는 문을 하나 확실하게 닫고 나올 수 있었다.
여전히 내 손에 쥐어진 확실한 답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닌 길을 확인했기에 다음 길로 나아갈 준비는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엔, 인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