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정 04: 멈추는 연습이 필요했던 시간
길이 내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쉼'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멈춰본 적이 없었다.
복학 이후의 삶은 늘 계획표대로 움직이는 바쁜 나날이었다.
공부가 재미있어지자 학교와 도서관이 전부가 되었고,
졸업 후 곧바로 교사가 되어 쉼표를 찍을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선생님은 방학이 있어서 좋겠어요." 주변의 이 말은 늘 달콤한 오해였다.
기숙사 사감과 보충수업이 이어졌고, 진짜 방학은 길어야 일주일 남짓이었다.
그때마다 떠났던 여행은 쉼이라기보다 다음 달릴 힘을 채우는 충전에 가까웠다.
3학년 담임을 마치고 맞은 유일한 겨울방학마저 전문상담교사 양성과정 이수로 채워버렸으니.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비워본 것은.
그래서 나는 장기 템플스테이를 떠올렸다.
한두 달쯤 홀로 머물며 나를 찾고 싶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충남의 한 작은 사찰을 찾았고, 그곳의 세 분 스님은 나를 조용히 맞아주셨다.
불교는 내게 종교라기보다 오랜 삶의 철학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30년 넘게 간직한 접시 하나가 있다.
대학 시절 과외하던 집의 학부모님이 주신 선물인데, 거기에는 '네 덕, 내 탓'이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그 문장은 오래도록 내 삶의 기준이 되어왔다.
사실 영성에 대한 나의 관심은 더 오래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가톨릭 사제가 되고 싶었다.
해외 선교사로서의 삶을 꿈꾸며 선교회 입학 허가까지 받았다.
영성 담당 신부님은 "루치아노 선택에 맡기겠어요. 어떤 선택이든 하느님의 뜻이라 여기겠으니 부담 갖지 말고 2년 동안 잘 생각해 봐요."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그 길을 선택하지는 못했다.
어머니의 반대도 있었지만, 결정적이었던 것은 우연히 들었던 부모님의 대화였다.
"당신 때문에 애가 결혼도 안 하고 신부가 된다고 하잖아. 다 당신 탓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짐을 더는 것이 두려워 물러섰다.
돌이켜보면 용기가 부족했다.
그래서였을까. 불교는 죄책감 없이, 조금 더 편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내가 머물게 된 사찰은 자유로웠다.
정해진 프로그램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씀만 들었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났을 때, 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누다 들은 말 한마디가 나를 망치처럼 멈춰 세웠다.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죠? 처사님은 쉴 줄을 모르시는 분이에요."
그 말은 정확했다.
그 일주일 동안 나는 계속 안절부절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안했고, 계획 없는 쉼이 두려웠다.
그때야 알았다. 나는 쉬는 사람이 아니라, 쉬는 흉내만 내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쉼은 선택이 아니라, 연습이 필요한 능력이었다.
그 깨달음은 이후의 더 깊은 방황으로 나를 이끌었다.
조용하고 완벽할 것 같았던 쉼은 곧 스스로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 되었고,
그 질문은 마침내 결단을 부르기 시작했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나는 아직 알 안에 있었다.
다만, 쉴 줄 모르는 불안정한 나 자신을 깨닫는 순간, 그 껍질에 처음으로 깊은 금이 가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그 금이 본격적인 방황으로 이어진 이야기를 하려 한다.
쉼이 끝나자, 나는 뜻밖의 권유를 받게 되었고, 그 선택은 세 번의 도망으로 이어졌다.
그 이야기는 내가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얼마나 멀리 돌아가야 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