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출근길, 혼자가 아닌 우리

나를 품은 우리 01: 고립을 선택했던 나에게, 다시 '우리'가 찾아왔다

by 낙천지명

국가직과 지방직 면접을 모두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통의 연락이 왔다. 지방직이었던 고향의 군청에서 실무수습을 시작하라는 통지였다. 사실 마음은 국가직을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기꺼이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뗐다.

마치 먼 길을 돌아온 여행자에게 고향이 내어준 짧은 휴식 같았다. 행정과 회계 업무를 익히며 공직의 결을 몸으로 배우는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어디로 가든, 지금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고.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 때, 기다리던 국가직 발령 통지가 도착했다. 나는 정들었던 군청 분들께 인사를 건네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20년 만의 합숙, 서툰 섞임의 시작

임용 전 교육은 4주간의 합숙으로 진행되었다. 군 전역 이후 거의 20년 만에 겪는 단체 생활이었다.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마주한 동기들은 대부분 나보다 열 살, 많게는 열다섯 살이나 어린 친구들이었다. 늦깎이 신입이라는 사실이 잠시 나를 주춤하게 했지만, 모둠 활동과 참여형 수업이 이어지며 이질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특히 함께 머물렀던 분임원 일곱 명과의 시간은 유독 각별했다. 서울에서 호남까지,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모인 이들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잊고 지냈던 감각을 되찾았다. 한 명씩 결혼을 하고 삶의 속도가 달라지기 전까지, 우리는 종종 각자 흩여졌던 근무지 중심으로 전국을 오가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여행을 함께했다. 고립을 자처했던 나에게 그들은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준 다정한 침입자들이었다.


'나'로만 채웠던 세계에 '우리'가 스며들 때

오랫동안 나는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와 일이라는 목표 외에는 불필요한 모임을 만들지 않았고, 그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나다운 방식이라 믿어왔다. 혼자가 편하다는 말은 때로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겠다는 방어기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기들과 보낸 4주간의 시간은 내 견고한 세계에 작은 균열을 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눈빛, 시시콜콜한 농담 끝에 터지는 웃음소리. ‘나’로만 가득 찼던 공간에 ‘우리’라는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하자, 비로소 내가 놓치고 살았던 풍경들이 보였다. 혼자 버티는 삶은 단단할지 모르나, 함께 살아가는 삶은 이토록 따스하다는 것을 마흔이 넘어서야 배운 셈이다.


이제는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교육을 마치고 나는 연고도 없던 경기도 북부의 한 기관으로 배치받았다. 늦깎이 신입이었지만 조직의 평균 연령대가 높은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막내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직원 숙소에 짐을 풀고 처음 출근하던 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은 ‘나’로 존재하지 않고, ‘너’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그 문장이 그제야 머리가 아닌 가슴에 와닿았다. 내가 다시 삶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힘은 업무의 성취감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걷는 사람들의 존재였다.

혼자 견디던 시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간으로. 다시 시작된 나의 출근길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이제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나를 반겨줄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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