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품은 우리 02: 방황의 마침표를 찍어준 한마디, 이제는 정착해라
나를 찾던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스님 한 분을 만났다. 내 머리를 두 번이나 직접 깎아주셨던, 내 방황의 시작과 끝을 오롯이 지켜봐 주신 분이다. 여정이 끝난 뒤에도 인연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면접을 준비하던 간절한 시절에도 나는 그분이 계신 춘천의 작은 사찰에 머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절집의 하루는 단순했고, 비워낸 마음은 그만큼 고요하게 차올랐다.
마침내 합격 소식을 전하던 날, 스님은 누구보다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다. 그리고 축하의 끝에 묵직한 숙제 하나를 덤덤히 건네셨다.
“이제 내려가면 꼭 결혼해라. 그러지 않으면 너는 또 십 년쯤 직장 다니다가, 다시 봇짐 싸서 방황하게 될 게다.”
그것은 당부라기보다 내 삶의 궤적을 꿰뚫어 본 예언에 가까웠다. 놀랍게도 그 서슬 퍼런 문장이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닿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주저 없이 사표를 던질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오직 혼자였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가정도, 책임져야 할 입도 없다는 사실은 결정의 무게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 나는 그 가벼운 자유에 오랫동안 기대어 살았다. 하지만 그 자유의 유효기간이 다해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의 야윈 얼굴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내가 나를 찾겠다며 길 위를 헤매던 시간 동안,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다행히 이른 발견과 꾸준한 재활로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한사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셨지만, 나는 그것이 나의 방황이 남긴 흔적인 것만 같아 오래도록 죄책감을 안고 지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억지로 삶의 형태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이제는 나의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오랫동안 나는 결혼을 하나의 거대한 굴레로 여겼다. 정신적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솔로를 선택했고, 그 선택이 나를 단단하게 지켜주던 시절도 있었다. 젊은 시절 사제나 방황할 때 스님의 길을 가고자 했던 이유 역시, 어쩌면 고독에 대한 순수한 갈망보다는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독신의 열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긴 여정을 지나오며 생각의 결이 달라졌다. 결혼은 나의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적극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가족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이 아니었다. 누군가와 매일 아침 마주 앉아 밥을 먹는 평범한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나는 비로소 ‘나’라는 성벽을 허물고 ‘우리’라는 울타리를 세울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는 “타인에 대한 책임이 곧 나의 정체성이다”라고 말했다.
그 난해했던 문장을 이제야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정한 정착이란 단순히 한 곳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기꺼이 누군가의 삶에 책임을 다하기로 마음먹는 일이었다.
스님이 남긴 마지막 숙제는 내 삶의 다음 장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었다. 혼자여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자, 역설적으로 더 큰 자유가 찾아왔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어도 괜찮아졌고, 아니, 기꺼이 혼자가 아니기를 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우리’를 품을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