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을 위한 아빠라는 이름의 멈춤

함께 크는 매일 03: 육아는 돕는 일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일이다

by 낙천지명

아이가 열 달 무렵 되었을 때, 나는 육아휴직을 선택했다.

그 결정은 거창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온종일 대답 없는 아이와 마주하며 고요한 고립을 견뎌야 했던 아내의 적막을 보았기 때문이다.

육아는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기쁨이지만, 동시에 가장 지독한 외로움이기도 하다.

늦깎이 부모가 된 우리에게 아이를 돌보는 일은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었고, 나는 아내의 스트레스와 우울을 막는 것이 내 커리어보다 훨씬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했다.

물론 대가는 있었다.

직장에서 오랫동안 갈망하던 업무 기회가 찾아왔으나, 휴직을 준비하던 내게 그 기회는 머물지 않고 다른 이에게 흘러갔다.

잠시 아쉬움이 스쳤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멈춰 서기로 한 사람이었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뻗었던 가지를 스스로 쳐낸 자리에, 아이와 함께 내릴 뿌리의 공간이 생겼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정교한 설계였다.


제주, 세 가족의 첫 번째 행진곡

휴직의 시작과 함께 우리는 제주로 향했다.

아내의 복직을 앞두고 세 가족이 처음으로 떠난 비행이었다.

제주의 날씨는 마치 우리의 결정을 축복하듯 사흘 내내 눈부시게 맑았다.

유아차를 밀며 해변을 천천히 걷던 그 시간, 공기는 소금기를 머금어 짭조름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행은 생경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바닷가 카페에 앉아 윤슬을 바라보며 마시던 커피 한 잔의 여유는 그 어떤 성취보다 달콤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사진을 꺼내 본다.

돌 무렵의 아이는 앞니가 겨우 두 쌍이 올라온 작은 입으로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무구한 웃음을 보고 있으면, 내 안의 소란스러웠던 욕심들이 조용히 잠든다.


유아차를 밀며 만난 아침의 고요

아내가 출근한 뒤, 나와 아이의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이면 유아차를 끌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번화가의 소음이 잠 깨기 전, 서늘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걷는 일은 우리의 일과였다.

단골 카페에 들러 모닝커피의 진한 향을 맡는 것으로 하루의 마침표가 아닌, 시작표를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시장에 들러 싱싱한 채소와 고기를 샀다.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우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먹는 양이 적어 늘 마음을 졸이게 했다.

그래서 정성껏 만든 이유식을 아이가 한 입이라도 맛있게 받아먹어 줄 때면, 세상의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보다 더 큰 안도감이 밀려왔다.

많이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그릇을 비워내는 아이의 작은 입술에서 나는 삶의 가장 순수한 보람을 목격했다.


육아는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

일 년의 육아휴직은 내 삶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겼다.

아이와는 살을 맞댄 깊은 애착이 생겼고, 아내와는 육아라는 전장에서 함께 구른 전우애 같은 대화가 깊어졌다.

TV가 없는 거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소리를 배경 삼아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공유했다.

나는 이제 후배들에게 서슴없이 말한다.

가능하다면 아빠도 육아휴직을 해보라고. 특히 이유식을 시작하는 시기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권한다.

아이가 무엇을 먹고, 어떤 표정으로 성장하는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경험은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평생을 버틸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육아는 아내의 일을 거들어주는 ‘도움’이 아니라, 한 생명의 시간을 함께 책임지는 ‘동행’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보이는 것들

아이는 어느덧 아홉 살이 되었다.

가끔 훌쩍 자란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그때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그 시간이 가능했던 것은 아빠의 빈자리를 허락해 준 직장의 변화와, 무엇보다 나의 서툰 결심을 믿어준 아내의 동의 덕분이었다.

소아과 의사 벤저민 스포크는 말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곁에 있어 주는 부모다.”라고.

돌이켜 보면 내가 아이에게 해준 일은 그리 대단한 것이 없었다.

그저 곁에 머물며 아이의 속도에 내 시계를 맞추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평범하고 느린 시간들이 모여 우리 가족의 가장 단단한 코어를 만들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의 성장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다.

아이가 살아가는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그 믿음을 품고, 아이와 함께 나란히 길을 걷는다.

챗 GPT 이미지


매거진의 이전글가장 느리고도 다정한 약속, 시간을 선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