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를 잇는 사랑의 이유식

함께 크는 매일 04: 대물림되는 미안함, 이유식이라는 이름의 고백

by 낙천지명

오랜 자취 생활을 거쳤음에도 나에게 요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달걀프라이와 김치찌개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달걀프라이는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지금도 아홉 살 아이는 내 달걀프라이를 보면 엄지를 치켜세우지만, 그 노란 노른자를 볼 때마다 나는 한 사람을 떠올린다.

나의 외할머니다.

어릴 적 부모님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젖소 목장으로 향하셨다.

텅 빈 집에서 내 밥상을 채워준 것은 외할머니의 거친 손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형편을 알았기에 반찬 투정은 사치였다.

하지만 초라한 도시락 가방을 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한쪽 몸이 굳어버린 할머니는 말씀조차 잃으셨다.

편입으로 서울로 올라가야 했던 나는 여름방학 때 잠시 할머니의 곁을 지켰다.

서툰 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였다.

밥상 위에 노란 달걀프라이 하나를 정성껏 올려드리는 것.

할머니는 그 초라한 요리를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말씀은 없으셨으나, 젖어오는 눈빛은 "고맙다"는 떨리는 고백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고마움과 죄송함을 다 전하기도 전에 할머니는 먼 길을 떠나셨다.


인생의 두 번째 요리, 아이의 첫 세상

결혼 후 나의 요리 목록에 해물 토마토 파스타가 추가되었다.

소스를 사서 면을 볶는 수준이었기에 요리라기보다 조리에 가까웠지만, 아내는 가끔 내가 차린 그 식탁을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그리고 마흔넷, 아빠가 된 나에게 인생의 두 번째 진짜 요리가 찾아왔다.

바로 아이의 이유식이었다.

이유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파스타를 만들 때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육아 서적들을 탐독하며 이 시기의 미각이 아이의 평생 입맛을 결정한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정교한 설계자가 되어 재료를 골랐다.

아이의 개월 수에 맞춰 채소와 고기를 다지거나 깍둑썰기했다.

꽃게 살을 일일이 발라내는 등, 죽이나 주먹밥을 만들어 소분하여 나누어 담았다.

아이는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으나, 고맙게도 내가 만든 이유식만큼은 기꺼이 받아먹었다.

여행 중에는 시판 이유식을 사 먹이는데, 그때는 거의 입을 대지 않았다.

내가 직접 만든 것을 더 잘 먹어줄 때면, 내 어깨 위로 묘한 자부심이 솟구쳤다.

턱받이 아래로 음식들이 흘러내려도 그 모습마저 경이로운 풍경이 되었다.


부모는 늘 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본다

아이의 입가에 묻은 이유식을 닦아주던 어느 날, 문득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어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남들처럼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시절 목장 일에 치여 자식의 끼니를 외할머니 손에 맡겨야 했던 당신의 가슴에는 얼마나 깊은 멍이 들어 있었을까.

부모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부모란 존재는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면서도, 주지 못한 단 하나를 떠올리며 평생 미안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 기억 속에는 희미할지 몰라도, 부모님과 외할머니 역시 그 척박한 시대 속에서 당신들의 최선을 다해 나를 먹여 키우셨을 것이다.

그분들의 '미안하다'는 말은 사실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 또한 언젠가 아이에게 같은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서,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 아이와 함께 하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하고자 하지만 언제나 부족하다.


사랑을 이어가는 한 그릇의 무게

미국의 작가 로버트 풀검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이유식은 단순한 영양의 공급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할머니의 달걀프라이에서 시작되어 어머니의 눈물을 거쳐, 이제 내 아이에게로 흐르는 사랑의 전수였다.

한 그릇의 이유식에는 삼대의 시간이 담겨 있다.

나를 먹여 살린 투박한 손길과, 내가 아이를 위해 다지고 끓인 정성이 그 안에서 섞인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몸집을 불리는 과정이 아니라, 앞선 세대가 남긴 사랑의 온기를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이어주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식탁에 마주 앉는다.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한 숟가락의 온기가 훗날 아이가 세상을 살아갈 단단한 힘이 되기를 기도하며.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먹이고 키우며, 매일 조금씩 사랑을 완성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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