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크는 매일 05: 완벽한 부모보다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되기로 한 날
나의 복직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늘 아빠와 엄마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숨 쉬던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할 시간이었다.
단지 내 가정어린이집을 수소문하며 나는 몇 번이나 마음을 고쳐먹었다.
집이라는 안전한 궤도를 벗어나 낯선 행성에 아이를 홀로 남겨두는 일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복직 한 달 전부터 조금씩 거리를 두는 연습을 시작했다.
조금 늦춘 아침 출근길에 내가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후 세 시쯤 파트타임 근무를 마친 아내가 아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세 가족의 일상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 첫 번째 변화였다.
어린이집 적응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처럼 천천히 진행되었다.
첫 주에는 한 시간 동안 아이 곁을 지켰고, 둘째 주에는 두 시간, 셋째 주에는 점심시간까지 시간을 늘려갔다.
낯선 공간이 아이의 여린 마음을 할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나의 불안을 잠재운 건, 그곳의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자상한 원장님과 세심한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의 한 끼를 정성껏 준비하는 조리사님의 뒷모습에서 나는 안심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적응 3주 차 어느 날, 아이가 밥을 먹다 음식을 바닥에 흘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휴지를 집어 들었다.
어질러지기 전에 먼저 정리해야 한다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깔끔한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원장님이 조용히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셔도 괜찮아요. 아이에게는 기다려 주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 한마디에 내 움직임이 멈췄다.
상담 심리학을 공부하며 아이의 자율성과 그 기다림을 머리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정작 내 몸은 조급함과 아이의 시행착오를 가로막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의 서툰 습관을 하나씩 교정해 나가는 과정임을, 그 작은 식탁 앞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적응기 몇 주 동안, 어린이집 문 앞은 매일 아침 작은 전쟁터였다.
등원할 때마다 아이는 내 옷자락을 놓지 않았고, 끝내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닫히는 문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아빠의 심장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문밖에서 서성이던 내게 선생님은 늘 같은 목소리로 안부를 전했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웃으면서 잘 놀아요.”
살짝 엿보았을 때, 거짓말처럼 아이는 금세 눈물을 닦고 친구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조금 예민한 기질을 가진 아이였기에 적응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아이는 결국 자신만의 속도로 그곳을 즐거운 놀이터로 바꿔놓았다.
등 뒤에 남겨진 아이의 울음소리를 견뎌내는 일, 그것은 부모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이별의 근육'이었다.
어린이집 생활이 깊어질수록 아이는 집으로 세상의 조각들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흙 묻은 옷을 입고 돌아와 감자와 고구마를 캤다며 자랑하기도 하고, 서툰 손길로 만든 작은 꽃바구니를 내밀기도 했다.
식탁 위에 놓인 그 작은 생화 바구니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다.
아이는 이제 아빠의 손을 잡지 않고도 자신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
낯선 친구들과 어울리고, 흙의 촉감을 배우며, 스스로 꽃을 고르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사회인'으로서의 첫 자존감을 엿보았다.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 도널드 위니컷은 말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부모(Good enough parent)다.”라고.
나는 결코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다만 아이가 자신의 세상을 넓혀갈 때, 적절한 거리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부모가 되고 싶다.
문 앞에서 울던 아이를 뒤로하고 돌아섰던 그 아픈 기억을 밑거름 삼아, 나는 오늘도 아이의 성장을 묵묵히 응원한다.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