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복을 입고 찾아온 기회, 준비된 우연

함께 크는 매일 06: 배움의 흔적이 아이의 길이 되는 마법 같은 순간

by 낙천지명

아이의 시간에도, 나의 시간에도 변화의 계절이 찾아왔다.

따스한 보살핌 아래 가정어린이집에 적응했던 아이는 어느덧 기저귀를 뗐고, 두 번의 생일을 넘겼다.

다섯 살, 만 세 살이 되는 봄을 앞두고 우리는 아이를 위한 더 넓은 세상을 찾아야 했다.

집 앞 시립 어린이집의 대기 순번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근처 다른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을 둘러보아도 마음 한구석을 채우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때, 정적을 깨는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본부로 전보를 올 수 있겠느냐는 인사 담당자의 제안이었다.

나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승진이나 선호 업무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본부 종합청사 안에는 믿을 수 있는 시설로 이름난 직장 어린이집이 있었다.

출퇴근길에 아이와 손을 잡고 등원할 수 있다는 사실, 부모로서 그보다 더 매력적인 조건은 없었다.

한때는 내가 좋아하는 업무와 동료를 우선순위에 두었으나,

아빠가 된 뒤 내 삶의 무게중심은 이미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25년 전의 데자뷔, 길을 만드는 공부

살다 보면 기적 같은 우연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우연의 꺼풀을 한 겹 벗겨보면, 그 안에는 오래전부터 묵묵히 쌓아온 준비의 흔적이 숨어 있다.

25년 전에도 그랬다.

군 전역 후,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던 영어를 붙들고 토플 공부에 매달렸던 시간이 있었다.

학부 졸업 후 교육대학원 진학을 위한 준비였다.

그러데 이듬해 우연히 후배의 손에 이끌려 치른 편입시험.

그 시험에서, 하필 내가 응시한 해에만 유독 수학과 영어를 동시에 평가하는 기묘한 변화가 생겼다.

전공인 수학과 1년간 준비한 영어가 시너지를 내며 기회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번 전보 역시 그랬다.

복직 후 업무와 육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기관 차원에서 새롭게 운영되는 머신러닝 교육의 기회를 잡았다.

교육기관이 있는 두 시간 거리의 지방까지 내려가며 15주간 매주 하루씩 강의를 들었다.

누군가는 업무와 상관없는 쓸데없는 공부라 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그 시간 자체가 즐거워 기꺼이 팀 프로젝트와 시험의 파도를 넘었다.

그때의 배움이 본부에 새로 생긴 업무의 적임자로 나를 지목하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승진을 위한 계산이 아니라, 그저 배움이 좋아서 선택했던 시간이 결국 아이와 나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이다.


기회는 항상 떠 있다, 준비된 자의 손을 향해

교직에 몸담았던 시절,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기회는 항상 하늘에 떠 있다. 다만 그 기회를 낚아채는 것은 늘 준비된 사람의 손이다.”

지금 당장 쓸모없어 보여도 배우기를 멈추지 말라는 말, 준비하는 습관을 지니라는 그 말을 나는 스스로 증명해 보인 셈이다.

나의 전보 발령은 2월 초였고, 아이의 새 어린이집 등원은 3월 초였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시간표를 보며 나는 안도했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 더 넓은 사회로 나가는 아이와, 새로운 자리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는 나.

우리 두 사람의 길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 '성장'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작업복을 입고 찾아오는 성장의 순간들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은 말했다.

“기회는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그냥 지나가 버린다. 그것이 작업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기회는 화려한 드레스나 정장 차림으로 오지 않는다.

땀 냄새나는 공부의 흔적, 고단한 육아의 시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인내라는 투박한 작업복을 입고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것이 기회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알게 된다.

무의미해 보였던 그 모든 시간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온전한 길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는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나는 새로운 사무실에서 각자의 우주를 넓혀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러나 언제나 연결된 마음으로 함께 자라고 있다.

준비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그 다정한 우연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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