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크는 매일 07: 미안함과 고마움 사이, 서두른 아침이 남긴 선물
예상대로 직장 어린이집은 훌륭했다.
깨끗한 시설과 믿음직한 선생님들의 눈빛은 부모로서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안심이었다.
하지만 그 안심을 얻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시간'이었다.
전철로 이십 분 거리인 직장까지 출근 시간의 지옥철을 아이와 함께 견딜 수는 없었다.
결국 핸들을 잡아야 했고, 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기 전 새벽 공기를 가르며 집을 나서야 했다.
등원 시간은 자연스레 빨라졌다.
아침마다 나는 깊은 잠에 빠진 아이를 이불로 돌돌 말았다.
마치 귀한 보물을 보자기에 싸듯, 조심스럽게 안아 들어 카시트에 눕혔다.
어린이집 문이 열리는 아침 7시 30분, 정적만이 흐르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기다리면 아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잠결에 옷을 갈아입히고 어린이집 문을 두드리는 나의 아침은 늘 미안함과 걱정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만 세 살의 아이에게 잠은 보약보다 귀한 성장의 시간이다.
그런 아이의 단잠을 강제로 깨워 차가운 시트로 옮기는 일은 매번 마음 한구석에 생채기를 냈다.
‘과연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 걸까.’
또래보다 조금 적게 나가는 아이의 몸무게를 확인하는 날이면, 그 죄책감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다행히 어린이집에는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아침 아홉 시면 제공되는, 식사에 가까운 든든한 간식 덕분에 나의 무거운 마음은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는 그곳의 생활을 즐거워했다.
“아버님, 아이가 밥을 정말 잘 먹어요. 거의 설거지를 할 정도예요.”
원장님의 그 웃음 섞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마음속을 짓누르던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다행히 아이가 조금 더 크면서 일찍 일어났다.
이후로 어린이집 앞에 도착하여 아이와 함께 아침 산책을 즐길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아침은 서둘러 흘러갔지만, 하원 길은 우리만의 느긋한 축제였다.
오후 다섯 시, 어린이집 문 앞에서 다시 만난 아이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교실이 되었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우리는 끝말잇기를 하고 숫자 놀이를 즐겼다.
“아빠, 십이 열 개 있으면 뭐야?”
“백이지.”
“그럼 백이 열 개 있으면?”
아이의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차 안의 공기를 채웠다.
어떤 날은 일과가 고됐는지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어느 순간 대답이 멈췄다.
고개를 돌려 보면 아이는 어느새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시동을 끄고 잠시 아이의 평온한 숨소리를 들었다.
아이를 그대로 안아 집으로 옮겨 눕히고 나면, 나의 하루도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
그 시절 나는 늘 아이에게 미안한 아빠였다.
하지만 어느덧 아홉 살이 된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깨닫는다.
그 이른 아침의 등원 길과 차 안에서 나누었던 사소한 대화들이 아이의 마음속에 작고 단단한 씨앗이 되었음을.
아이는 지금 또래보다 어휘가 풍부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를 즐긴다.
아마 그 긴 통학 시간 동안 우리가 주고받은 단어와 숫자, 웃음소리들이 아이의 어휘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다.
부모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우리는 때로 서툴고, 상황에 떠밀려 아이에게 미안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남는 것은 부모의 완벽함이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의 농도다.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는 말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라고.
돌이켜 보면 그 이른 아침의 등원 길은 고난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긴 밀월여행이었다.
조금 서툴렀고 매일이 분주했어도, 우리는 늘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시간은 충분히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