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누크빌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우리는 배를 타고 이곳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코롱 섬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비가 오는 요즘이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바와 달리 하늘은 아주 화창했다.
승선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도희언니와 나의 눈을 사로잡은 사람이 있었다.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혼자 티켓을 확인하고 카리스마 넘치게 질서를 정리하던 안내원 언니였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에서 바다의 거칠고 시원한 기운이 풍겨져 나왔다. 어깨에 새긴 타투 하며, 목에 무심하게 걸친 악세서리하며, 마치 캘리포니아에 살며 서핑이 취미인 털털한 걸크러쉬 언니 느낌이랄까.
아침밥으로 작은 빵이 하나씩 제공됐고, 우리는 대충 허기만 달래고 뱃머리로 나와 바닷바람을 머리 휘날리게 맞았다. 오랜만에 짠내 나는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모두 말없이 시원한 자연 선풍기를 즐겼다.
스멀스멀 멀미의 기운이 올라올 때 즈음, 코롱섬에 도착했다. 섬을 천천히 거닐었다. 한적하지만 쾌활한 섬이었다. 사람들의 들뜬 말소리와 파도소리만이 우리의 귀를 적셨다.
돌아가는 배가 뜰 때까지 세 시간 정도 섬에 머물 수 있었다. 선물과 같은 여유가 찾아왔다. 나는 수영을 하다가 해먹에 누워 햇빛을 피하며 낮잠도 잤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든, 캄보디아에서든 나에게 이런 '여유'는 앞으로 찾아올 위기의 복선과 같았다. 그래서 항상 되뇌어야 했다. 지금 이 여유를 즐겨야 한다고, 다가오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잠시 미뤄두자고.
살아가면서 불행한 순간들이 있기에 비로소 때때로 찾아오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정신없이 바쁜 일상이 있기에 때때로 찾아오는 여유가 값진 법이다. 아직은 이런 여유마저도 일상의 일부라고 받아들일 만큼 나의 시간은 느리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시침과 초침은 내 안이 아닌 바깥을 향해 있고 그래서 언제나 변화에 취약하고 위태롭다.
굽어진 선체의 모양에 따라 정사각형이 아닌 사다리꼴 모양을 한 이 배의 창문처럼, 나 또한 안과 바깥의 조화로운 균형을 찾고 싶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아직 시계의 배터리는 충분하다.
숙소가 있는 세렌디피티 해변에 돌아와 망고를 샀다. 너무 익지도, 그렇다고 너무 설익지도 않은 맛있는 망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