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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Jul 06. 2019

하루 한문장_3

 나의 플랫엔 룰이 없다. 처음 이 방에 들어와 옆방 친구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용기 내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은 이 거주 공동체의 규칙이었다. 화장실의 휴지, 설거지 더미, 꽉 찬 쓰레기통과 같이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걸로 얼굴 붉히기 싫었다. 법이 있어야 죄를 물을 수 있으니까. 룰이 없다는 그의 대답에 난 앞으로 벌어질 혼란, 카오스 상태에 빠질 1.2번 플랫의 앞날에 걱정이 앞섰다.
4개월이 지난 지금, 무질서 속에서도 유지되고 있는 이 평화가 여전히 떨떠름하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채워져 있는 화장실 휴지, 깨끗이 정리된 복도, 비워진 쓰레기통. 때때로 내가 나섰듯, 내 플랫 메이트들도 그랬을 것이다. 룰을 정한 플랫보다 우리는 더 조화롭고 때때로 뿌듯함을 느낄 여지도 있다. 다짜고짜 규칙부터 물었던 4개월 전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워질 정도.
하지만 얼마나 요원한가. 이 고요한 무질서가 확장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또다시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자마자 물을 것이다. 이 곳의 룰은 뭔가요. 난 지킬 준비가 되어 있으니 당신들도 지켜주세요. 우리 서로 침범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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