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msloe Plantation을 개척한 사람들이 살던 흙집
한 번 살아보고 싶어지는 아담한 오두막
보맥(보드카+맥주)을 돌리고 삼겹살을 나누며
쓰잘데없는 이야기 주고받으며 낄낄거리고 싶은 작은 저택
보막(보드카+막걸리)에 취해 쓰러져 자고 싶은 호화 텐트
이 집은 술꾼들의 낭만을 만족시키는 곳이 아니랍니다
남의 땅을 점령하고 개척하던 白人들이 피곤한 몸을 쉬던 보금자리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도 죄책감 없이 잠들던 오막살이
Native American의 권리를 찾고자 외치는 것이 아니랍니다
슬픈 인류 역사를 취한 눈으로 그냥 보고자 함이요
끝 날이 올 때까지 변하지 않을 人間의 욕심을 느껴보자는 것이랍니다
대서양을 건너온 白人들의 탐욕 덕택에
태평양을 건너온 나 또한 욕심을 채우고
죄책감 없이 오두막의 10배는 될 듯한 집
편안한 침대에서 오늘 밤도 쿨쿨 잘 것 같으니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누가 누구를 경멸하겠소
그저 이런저런 폭탄주나 마시며 취하고
지구의 종말이나 목 놓아 기다리는 것이 어떻소?
오두막 하나 보고 슬픈 역사니 탐욕이니 종말이니
과장이 심하네요 詩人의 직업병이겠지요
과장이 아니랍니다 사바나가 이 모든 것을 품고 있지요
두고 봅시다 이 오두막이 어떤 호화 저택으로 변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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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Wormsloe Plantation에서 사바나에 처음 들어와 개척하던 백인들이 살던 흙집을 보고 상념에 잠겼다. 자신들은 개척자라고 하지만, 남의 땅에 허락 없이 들어와 원주민들의 피로 그들의 삶의 터전을 마련한 침입자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유럽에서 온 백인들은 자신들 때문에 야만의 상태로 살던 원주민에게 문명을 전달하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세웠다고 주장한다. 이 미국 땅에 살고 있는 시인도 그 덕을 보고 있으니 그 주장이 백인들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다.
미국뿐이 아니며,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에 유럽의 백인들이 식민지를 만들어 원주민을 착취하면서 나라의 부를 축적했다. 좋게 말하면, 백인들이 진취적이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그 덕에 문명에 뒤 떨어진 나라들을 발전시켰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발전이 수많은 원주민들이 고통당하고 피를 흘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는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요즘 유럽의 강대했던 나라들이 그 힘을 잃어가는 것을 보면서, 드디어 그들이 죄값을 치르며 벌을 받고 있구나 생각하는 것은 시인의 순진한 발상인지 모르겠다. 시밖에 모르는 시인이 이런 머리 아픈 주제를 꺼낸 것은, ‘목적시’를 쓰고 있기 때문인데, 역시 시는 세속적인 목적 없이 순수하게 사랑이나 읊어야 된다는 명제가 다시 한번 증명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