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t a fan of John Wesley.
You don’t have to be either.
I am not a Methodist.
You don’t have to be either.
John had a fervent desire to spread the Gospel in America.
I had an ambition to have a snug life in America.
So, crossing the vast Atlantic Ocean, Wesley came to Savannah.
So, flying over the great Pacific Ocean, I came to America.
Unfortunately, John fell in love with Sophia and messed up his life.
Fortunately, a woman fell in love with me and enriched her life.
Wesley embarrassed himself by denying Sophia Hopkey’s communion.
I felt sorry for myself by not pleasing her in all over her life.
John was stupid enough to lead himself to scandal.
I was wise enough to keep my fling buried in my graveyard.
So, Wesley failed his mission and left Savannah.
I succeed in evading all the troubles and realized the American dream.
John went back to England and built the Methodist Church by using his failures in Savannah
I didn’t go back to Korea and built my life in America by using pure luck.
Wesley might have failed but Savannah remembers him through the statue and monument.
Not sure I will be remembered by America because I am having a cozy life.
John is dead, but I am still alive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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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는 감리교회를 세운 종교개혁자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시인은 Fort Pulaski National Monument를 방문했을 때 Cockspur Island에서 John Wesley 기념비를 보고, ‘존 웨슬리가 사바나에 왔었다고?’ 하며 전혀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고는 흥미로웠다. 시인은 천주교 신자라 종교개혁자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들(종교분열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의 이름만 들어 알 뿐이지 그들의 자세한 행적은 몰랐지만, 존 웨슬리가 전도를 위해 대서양을 건너 사바나까지 왔었다는 사실에, 시인은 그의 열정이 대단함에 놀랐다. 시 쓰는 데에만 미약한 열정을 보이는 시인이 감탄하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이 사람이 전도에 사실상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갔다는 사실, 그 실패를 바탕으로 감리교를 창설했다는 성공담, 사바나에서의 실패의 원인이 여자관계라는 가십 같은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를 즐기는 시인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웨슬리의 사바나에서의 행적은 인터넷을 찾아보면 자세히 알 수 있기에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시상이 떠오른 시인은 웨슬리의 사바나에서의 활동과 자신이 미국에 건너온 후의 행적을 비교해서 시를 썼다. 아무리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의 교단을 창설한 대단하다면 대단한 업적을 이룬 웨슬리와 아무 생각 없이 미국으로 유학 와서 잘 살다가 American Dream을 이루고 시인인 된 사람을 감히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같이 보이지만, 시인은 웨슬리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미국에서의 자신의 삶을 돌아보려고 했다면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단지 독자가 오해할 수도 있기에 영어로 썼다. 이해를 잘 못하면 오해도 안 하기 때문이리라. 영어뿐이 아니고,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논쟁이 될 만한 내용의 글은 외국어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인도 시인을 사랑하던 여인에게서 영어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이 시에 대단한 비밀이 숨어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