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상과 명상 사이
알아차림은 투리야라고도 한다. 투리야는 일상적 의식이 아닌 알아차리는 의식을 말한다. 일상적 의식이 생각, 느낌,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면, 투리야는 그저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저 알아차리기 때문에 일상 의식에 오염되지 않는다. 관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단지 쉬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이와 같은 알아차림을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다.
즉 멍상은 명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알아차림을 유지하기 위해서 알아차리는 기능에 힘을 줘야 하는데, 그게 쿤달리니 과정에서 삭티의 힘을 깨워 다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