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줄, 하루 한 대사.
대홍수로 만들어진 강은 아주 먼 옛날부터 바위를 타고 흐른다.
어떤 바위는 끊임없이 비를 맞았다.
바위 아래에는 말씀이 있고 말씀의 일부는 그들의 것이다.
I am hunted by water.
브레드 피트가 아름답게 출연한 영화를 물으면 3가지 영화 '가을의 전설', '흐르는 강물처럼', '조 블랙의 사랑'을 꼽는다. 그중에서 '흐르는 강물처럼'을 가장 좋아하는데 스크린에 명대사들이 넘쳐흐른다. 그 모든 멋진 언어들이 영화 마지막 대사 '나는 강물에 사로잡혔다' 한마디로 함축된다.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면 이 대사 하나에 어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책, 영화, 음악, 미술 등 모든 문화는 개인별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리뷰나 평론, 비평 등에서 설명하는 것에 내 감정을 대입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내게 이 영화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였다.
큰 아들 노먼은 아버지가 강조하는 규칙과 신앙을 잘 지키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남이 보기에 성공한 삶인 대학교수 자리까지 오른다. 반면 동생 폴은 자유 분방하다.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자유롭게 살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에 대한 대가는 노름빚보다 더 컸다.
현대 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기 위해선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항상 규범과 규율 안에서 살아온 사람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른다. 영화 속 노먼은 어린 시절 폴과 즐겼던 가끔씩의 자유를 '일탈'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폴에겐 삶, 그 자체였다. 자유로운 영혼은 체제 속에서 살아가기 어렵다. 부딪히고 터지고 깨진다. 자신을 좋게 보는 시선 따위는 없다. 그저 곪고 상처받으며 망가져 간다. 그렇다고 틀린 것일까? 자유를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영화 말미에 보이는 노년 노먼은 그 나이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떠난 후에야 자유가 무엇인지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할 뿐이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융합된다. 흐르는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