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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세연 Oct 10. 2021

디자이너의 삶, 그리고 정의

지금 배떡을 먹는 중입니다

때는 중학생시절이었다.

나는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학교를 다녔다. 부모님께서는 집근처의 국공립학교에서 벌어지는 엄마들의 치열한 치맛바람을 매우 싫어하셨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학군에서 내가 공부(라기보다는 경험)하기를 원하셨고 나 또한 그에 반대하지 않았다.

어느날 나는 알러지 비염이 심해 하교 후 미술학원을 빼먹고 집으로 바로 갔다.

오랜만에 미술학원을 가지않고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일찍 가는 길은 멀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편의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라면도 사서 갔다.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면서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한참 배고플 나이이기도 했고 집까지 가는 길에 허기가 지고 평소 금기시 되는 라면을 집에가서 몰래 끓여먹을 생각에 나는 너무 설렜다.

중학생이 되면서 혼자 간단한 조리를 해먹을 수 있게되자 엄마는 가스렌지를 독일산(당시 국내 제품이 없었음) 인덕션으로 교체해주었다. -중학생인 나에게 불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자연스럽게 냄비에 물을 조절하고 다 익지도 않은 라면을 식탁위로 가져가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더니 엄마가 들어오셨다. 라면(당시 라면을 먹으면 여드름이 생기는 체질이어서 혼났었다)을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런데 엄마는 학원을 빼먹고 집에 있는 것과 라면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안하셨고 예상치 못한 말을 하셨다.

“너는 커서 훌륭한 디자이너가 꿈이라면서 냄비째 라면을 허겁지겁 먹고 있냐? 너의 일상도 대충 떼우면서 감히 누구의 미를 디자인할 수 있겠니?” 라고 하셨다.

그리곤 주말에 엄마와 나는 백화점에 가서 예쁜 캐릭터가 그려진 면기 그릇을 두개 사주셨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라면을 먹을 때도 항상 예쁘고 실용적(화상으로부터 안전한)인 그릇에 담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미적 감각과 실용성을 깨달아 나가야한다고 하셨다. 그런 감각은 갑자기 생겨나는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때 이후로 나는 누가 보거나 보지않건 늘 디자인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환경과 자세로 살아갔다. 덕분에 나는 디자인학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수 많은 생활 속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늘 가득했다.


오늘 저녁 경선 결과(내가 투표한 후보가 낙선했다)가 나오고 집에서 혼술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배떡(배달 떡볶이로 유명한 집)을 시켰다. 환경호르몬 가득한 뜨거운 일회용 용기를 뜯어 소주를 마시는데 문득 중딩시절 때 엄마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아도 나는 내 소신대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마이클 센델의 저서를 보며 늘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했고, 학식을 갖춘 사람일수록 약자의 편에 서야한다는 것 또한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 경선의 결과는 기대했던것과 달랐지만 세상의 많은 곳에서는 아직 세상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조차 나은 세상을 위해 원칙을 지키며 살고 있는 사람은 많다. 우리가 결국 이기지 못하더라도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고 이런 개개인의 노력이 보수와 균형을 맞추며 정의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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