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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세연 Aug 20. 2020

햇빛이 참 따뜻했다

온기를 찾아서

“똑바로 걸어가시오. 남쪽으로 내닿은 길이오.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길이니 유감은 없을 것이오” 포로를 풀어주던 북한군의 말에 주인공은 끝없이 펼쳐진 눈밭을 정확하게 한 걸음씩 내 딛는다. 물론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와 똑같은 말을 듣고 똑같은 행동을 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이전에도 이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윽고 등 뒤에서 총성과 함께 강한 충격이 일어났고 나는 순식간에 눈 밭에 누워있었다. 등 뒤에서는 뜨거운 피가 흘렀지만 여전히 눈밭은 차가웠다. 하늘은 티없이 맑았고 나를 비춰주던 햇빛은 덧없이 따뜻했다.


때는 청소년기쯤 아마 고등학생 때로 기억된다. 학교 국어 또는 문학 과목의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수능 대비 예문을 읽으며, 글 속의 주인공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죽을 때를 알고 죽는 다는 것, 그리고 춥지 않게 죽어갔다는 것 이 두가지에 나는 그래도 행복한 죽음일 것이라 생각했다.

어릴때부터 생각해온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예기치 못한 사고에 의한 죽음이며, 얼마나 클지 모를 고통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정확히 죽을 시점을 알고 마음으로부터 준비를 할 수 있고, 따뜻하고 밝은 햇빛을 받으며 덜 고통스럽게 죽어갔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엔 어느정도 행복한 죽음이었으리라.


나는 가끔 글로 쏟아내지 않으면 마음 속이 복잡할 때가 있다  일종의 배설 창구로 글을 쓰게 된다. 어떠한 계획도 없이 내 머릿속의 생각과 복잡한 마음을 구구절절 쏟아내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평소에 억누르고 스스로 모른척하며, 괜찮다고 지내온 응어리들이 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의 응어리는 내가 그간 모른체 해 온 주변의 죽음에 관한 것들이다.

2년전 8년동안 매일 같이 만나던 친구를 떠나보냈다. 너무나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늘 만족해했고 남들보다 비교적 근무시간이 일찍 끝나는 직업의 특성상 항상 많은 친구들과 교류를 하며 말 그대로 인생을 바쁘게 즐기며 사는 친구였다. 내가 아는 한 그 친구는 늘 주변에 친구가 끊이지 않았고, 그렇게 놀러다닐 금전적 여유로움도 있었고 안정적인 직장과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며 보람도 가지고 있었다.

애인도 있었고 정신적인 교감을 하는 친구 그리고 섹스 파트너도 따로 있고 친구들도 여러 그룹으로 있어, 항상 다른 친구들을 파티를 통해 연결 시켜주기도 했다. 외로움을 타는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여유까지 있던 친구였다.


그러던 친구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스쿠버와 요트 등 해양스포츠를 즐겼다)인 여름에 자신이 좋아하던 산속에서 이른 아침에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먼곳에 사는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안된다며 실종신고를 한 탓에 하루가 지나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장례식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내 감정을 모른체했다. 슬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모여든 친구들을 위로해줬다.

“괜찮다. 사람이 죽는 이유는 자기 자신 밖에 모른다. 이해하려하지말고 몰랐었다고 자책도 하지마라. 그 애는 자신이 좋아하던 때에 좋아하던 장소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선택했고 성공했다…우리가 슬퍼하는 건 원치 않을 것이다. 항상 즐거웠던 파티를 즐기던 우리의 자유롭고 유쾌했던 친구로 기억하자”라고 달래줬다. 그러나 내 마음은 아직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오늘은 역대급의 길고 긴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된 첫날이다. 친구가 죽었던 열정적인 계절이다. 아직 그렇게 슬프지도 그립지도 않다. 어쩌면 죽는다는 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태어날 때 서로를 몰랐던 것처럼 죽음도 우리는 대부분 알 수 없다. 어느순간 친구가 되어 알게되는 것처럼 어느순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생각한다. 친구가 따뜻하게 죽어서 다행이라고  강렬한 햇빛 아래서 청명한 숲속에서 생을 마감해서 다행이라고…춥고 쓸쓸하게 죽어간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지는 못했지만 그 햇빛은 정말 따뜻했을 것이다. 그 여름의 강렬한 햇빛 덕분에 죽어서도 온기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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