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세연 Apr 21. 2023

누구나 일생에서 한 번은

에너지를 다 쏟았던 때

대학 새내기 시절 과제가 유난히 많던 학과 특성상 나에겐 동아리 가입은 사치였지만, 비교적 교양과목이 많은 1학년 때라 친구와 함께 동아리를 찾아갔다. 당시 80:1이라는 입시보다 더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가입한 동아리였다. 물론 내가 이 동아리에 에너지를 쓴 건 아니다. 동아리 내의 친구들 얘기다.


우리 동아리는 자체의 목적이 있는 전문적인 레포츠 동아리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레포츠 활동의 중점보다는 친목의 특성이 더욱 강했다. 때 묻지 않은 대학의 낭만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었다.

동아리의 개설 계기는 하늘 같은 동아리 선배로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 학교는 전통 있는 사립여대로 미스코리아 배출을 가장 많이 한 학교이기도 했다. 예대가 특히 유명했고 학교 내에서도 돋보이는 미모를 가진 선배들이 많았다. 여대이기 때문에 다른 (공부 수준이 높고 국립이라 이하 N으로 칭함) N대학교의 남학생들과 조인을 해서 만들어진 동아리였다. 우리 동아리 외에도 대부분의 여대 동아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어느 화창했던 지금과 같은 봄날 우리 학교 여자 선배 둘은 N대학교의 선배 둘과 2:2 미팅을 하게 되었다. 그 미팅의 인연으로 우리 동아리가 만들어지게 됐다. 서로에게 너무 완벽한 상대들은 만났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연애 따위 말고 네 명 모두 인생의 좋은 친구로 지내자는 다짐을 하고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무언가로 인연을 이어가기로 했고 그 해 우리 동아리가 창설됐다. 서로의 학교에서 소수의 후배들을 받아 조인해서 운영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배들의 학과가 주 측이 되어 이루어졌는데 바로 우리 학교의 예대와 인문대 N대의 의예과와 공대였다.

이렇게 학과가 한정된 동아리의 첫 신입생 환영회가 이루어졌다. N대학가 앞의 허름한 호프집에서 많은 인원이 테이블을 붙여 앉아 신입들의 소개가 시작되었다. 그중 아주 예쁘고 엄청난 섹시 스타일의 친구가 있었는데 당시 유명한 댄스그룹의 춤을 추며 짤막한 노래와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당시 N대의 예과 학생인 공부만 한 숙맥과 난 친구가 됐었는데 그 친구는 첫눈에 당차고 춤을 완벽히 외우는 우리 학교 여학생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 친구는 나에게 그 예쁜 신입생과 사귈 수 있다면 어릴 때부터 의예과에 들어오기 위해 했던 노력을 한 번 더 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그 둘은 그날을 마지막으로 동아리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여자 아이는 가끔 클럽에서 마주친 적이 있지만 남자아이는 보지 못했다.

1년이 지나고 그 친구는 오랜만에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군대에 가게 됐며 그동안의 상황을 간략하게 들었다.

그 여자 애는 일주일에 6번 이상을 클럽에 가는 아이였더랬다. 그래서 만나기 힘들었지만 본인도 그 여자애를 보기 위해 함께 클럽의 죽쟁이가 되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클럽과 그 여자애를 따라다니느라 1학기와 2학기 모두 학점을 날려버렸고 유급을 피하기 위해 군대를 이유로 휴학계를 낸다고 했다. 당시 예과 학생이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는 경우는 없었기에 이 친구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공중보건의나 군의관 입대를 했어야 할 친구가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에서 첫눈에 반해버린 여학생을 잡기 위해 군대를 가다니 멋졌다. 둘은 마침내(입대직전) 연인사이가 되었고 여자 친구는 그가 군대 다녀올 때까지 열심히 클럽 다니며 기다리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친구들 없이 그 과에서 혼자 입대하지만 후회 없다고 했다.


몇 년 후 나는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아침 뜨는 해를 봐야 책을 덮을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뭐가 그렇게도 간절했는지 아무도 없는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리고 24시간 드라이브 스루로 커피를 사들고 바다를 보며 하루를 계획했다. 집에 돌아가 두 시간 정도 짧은 잠을 청하고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어 쓰고 오분의 시간이라도 비면 책을 읽었다. 수많은 어려움과 냉대 스트레스가 존재했지만 힘들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공부를 마치고 이제는 긴 휴식기로 어떤 열정도 사라져 버리고 내겐 남아있지 않는 것 같다. 15년이란 긴 시간 동안 사랑도 열정도 희망도 모두 쏟아내고 티끌하나를 끌어낼 에너지도 의욕도 없는 요즘.....

가끔 열정 가득했던 스무 살 시절의 동아리 친구가 생각난다.

나에게도 그런 열정이 다시 올까?



작가의 이전글 닿지 못한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