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 우루밤바계곡을 통해 마추픽추로 간다
고도 3,740미터 안데스 산맥의 고원에 있는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잉카 문명의 중심지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네 청주공항보다도 더 작고 아담한 공항이었는데 산봉우리가 보이고 하늘과 참으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쿠스코는 3,300미터 정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걸을 때 숨이 찰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걷고 물도 자주 마시게 된다. 시내의 주도로는 좁은 왕복 2차선이며 식민지 시대의 모습 그대로 바닥이 벽돌로 깔려있다. 별도의 횡단보도도 없이 신호등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연신 오가는 자동차들로 교통경찰이 수신호가 이어지고 매연은 사정없이 내뿜어져 인상을 찡그리게 하였다.
더욱이 도착한 날은 12월 24일로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를 깃점으로 축제의 장이 열려서 가뜩이나 정신없는 쿠스코 시내가 관광객과 상인들로 북적거리고 정신없었다.
아는 사람만 간다는 로컬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그곳은 우리네 백반집처럼 메뉴판도 없어서 옆사람이 먹는 음식을 가리키며 달라고 하였다. 간단한 제스처, 명확한 의사표현! 이것보다 더 명확한 주문이 어디 있을까~
미! 미! 저거! 저거!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다는 아르마스 광장을 걸어가 보는 동안 굳이 지도나 이정표를 보지 않아도 사람들이 많이 걸어가는 곳을 쫓아가다 보면 아르마스 광장이 나왔다. 그만큼 관광객이 많았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하면 랜드마크인 분수대가 가장 먼저 보이고 축제답게 천사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매주 이렇게 퍼레이드를 하는 건지 크리스마스 이브라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보는 그 자체가 기분을 좋게 한다.
광장 안은 천막이 둘러지고 마켓이 형성되었다. 옷, 액세서리, 그릇 등 여러 가지를 팔고 있었지만 크리스마스 용품을 팔고 있는 곳들도 꽤 많이 형성되었다.
매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희망하는 나로서는 한여름인 이곳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인 것도 깜빡깜빡하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맞다! 눈이 오고 추워서 크리스마스는 아닐 테니까~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겨라!
북적대고 정신없는 광장을 빠져나와 '12각의 돌'을 찾아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벽들은 전부 각진 돌들로 쌓았고 그 모든 조각의 돌들은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이 옛 건축의 기술이라고 한다.
골목길을 가다 보면 사람들이 모여있고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김없이 12각의 돌이었고 그 옆에 전통복장을 하고 있는 남자가 서있었다. 12각의 돌 옆에서 사진을 찍을라치면 돈을 달라고 한다.
어김없는 바가지다. 개인이 성수기를 맞아 돈을 벌려는 심산인 것이다. 1~2달러 정도의 돈을 주면 되겠지만 나도 심산이 뒤틀려 12각의 돌 옆에서 사진 찍으려던 것을 그냥 돈을 주지 않고 12각의 돌만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심산이 뒤틀린 것은 뒤틀린 거고 전기톱도 건설 도구도 없던 그 옛날에 돌과 돌 사이에 접착제를 넣은 것도 아닌데 저렇게 아귀가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3,000미터가 넘은 쿠스코를 돌아다니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저녁은 간단히 라면을 먹으려고 숙소에 들어갔다. 나는 전기냄비를 가지고 다녔는데 조작하는 과정에서 전기냄비가 달궈진 것을 모르고 손을 대었다가 뜨거움에 놀라 전기냄비를 내팽개쳤다. 그 바람에 전기냄비를 떨어진 카펫은 살짝 눌어있었다. 이곳 숙소는 변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소문난 곳이다. 변상을 하게 되면 얼마나 나올까? 카펫 전체를 갈아야 하나? 아님 보수업체를 불러서 보수하는가? 등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떠돌고 있었고 오기 전에 들고 왔던 여행자보험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인지도 궁금했다. 손가락 데인 것은 우선 뒷전이고 놀 란마음도 내버려두고서 가지고 있던 맥가이버칼을 이용해서 눌어있는 카펫을 펴기 시작했다. 칼로 눌려서 뭉쳐진 카펫을 자르고 긁어서 카펫의 보풀을 일으키기를 한 시간 가량 시도하니 사진에서보다는 눌어진 색이 연하게 나왔다. 그곳을 탁자로 살짝 덮어놓으니 내가 보기에도 감쪽같았다. 내일 체크아웃할 때 걸리지 않으면 된다.
다음날 체크아웃을 위해 프런트에 대기하고 있던 시간만큼 초조할 때가 없었다.
무전을 받은 프런트의 직원이 나를 보고 웃으면 말했다. "오케이, 땡큐!! "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어! 완전범죄였어~
마추픽추로 가기 위해서는 우루밤바 계곡을 통해 오얀따이땀보에서 잉카 레일을 타야 한다.
'성스러운계곡투어'가 쿠스코 근처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잉카 레일을 탈 수 있는 오얀따이땀보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성스러운 계곡 투어를 이용해서 갈 예정이었다.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어제 아르마스 광장에서 산 루돌프 머리띠를 모자 위에 하고 짐을 챙겨 성스러운계곡투어에 올랐다. 버스에 올르는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스페인어와 영어를 할 수 있는 미남 가이드였다. 미남 가이드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쳐가며 영어로 설명하기 시작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가면서 듣고 사진을 찍은 후 나중에 검색하는 착한 관광객 모드로 변해있었다.
쿠스코의 머리라는 삭사이와만에 도착했다. 삭사이와만에서는 쿠스쿠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삭사이와만은 '콘돌이여 날개를 펼쳐라'는 뜻으로 하루 2만여 명의 인원으로 83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하는데 12각의 돌에서 본 것처럼 견고한 잉카의 석조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성벽일까? 담일까?
분명히 미남 가이드는 설명을 해 줬을 것이다. 내가 못 알아듣는 완벽한 설명을...
이제 잉카인들이 '신성한 계곡'이라고 부르는 해발 4천 미터 정도의 우루밤바 계곡으로 향했다. 우루밤바 계곡은 마추픽추로 가기 위해서는 꼭 통과해야 하는 곳이지만, 높은 고지대로써 고산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나에게 살짝 고산증상이 보였다. 숨이 가파르고 몇 발자국을 가지 못해 지치고 만다.
꼭대기는 발품을 팔아야만 하므로 나는 전망대에서 팔고 있는 찐 옥수수를 먹으면서 투어 일행들을 기다렸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보고 있자니 이 높은 지대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것도 대단하지만 계단식으로 밭을 경작하는 것도 대단했다. 잉카인들은 고산증에 전부 자유로웠을지도 궁금해졌다.
투어버스는 오얀따이땀보에 도착했다. 오얀따이땀보는 파차쿠텍왕 시대의 군사적 요충지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마다 결사항전을 벌인 곳으로 신성한 계곡의 중심마을이다. 이곳에도 작은 아르마스 광장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여느 마을과 같이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골목골목은 벽돌로 되어있어 어디를 들어가서 사진기를 들이대도 멋진 엽서가 되어 나왔다. 전통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우리 미남 가이드와 함께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이뻐서 함께 사진을 찍자 했더니 사진 찍은 후에 돈을 달라고 하였다.
어디서든 관광객이 봉이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저 높은 곳까지 깔끔하게 마련되어있는 계단식 농작지가 보였다. 잉카 사람들은 석조 기술도 대단하지만 이 높은 지대에서 완벽한 배수로 시설이나 정돈된 농작지에서 농작물을 가꾸고 살아갔던 기술도 대단한 것 같다. 사람들이 계단식 농작지 사이로 하나둘씩 올라가고 있었다.
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굳이 올라갈 필요가 없기에 밑에서 사진을 찍고 시간을 보냈다.
이제 잉카 레일을 타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