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말랑구게이트에서 김치를 만나다.
킬리만자로를 가기 위해 하루 종일 작은 차에 시달리면서 온 곳은 탄자니아의 작은 마을 '모시'라는 곳이다. 이왕 이곳에 왔으니 킬리만자로 정상을 가고는 싶지만, 저질체력과 일정상 간단히 맛보기 투어를 신청했다.
숙소에서는 와이파이도 되지 않아 저녁도 먹고 시내 구경도 할 겸 나섰다. 모시의 시내는 우리네 시골읍네를 생각하면 된다. 와이파이가 될만한 음식점에 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오래간만에 문명의 세계와 마주했다. 사실 아프리카 도착한 지 대략 며칠이 되었지만 그동안 와이파이가 제대로 된 때는 처음이었다.
내일 트레킹에 필요한 물과 간식을 준비하고 나니 날은 벌써 어두워졌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려 서두르는데 가로등도 없는 거리라 왔던 길이 가물가물하니 살짝 두근거리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길에 가로등이나 상점 하나 없는 거리를 오프라인 지도로 감을 잡고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면서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는데, 헉!! 그러나 이게 웬일?? 들어가는 입구의 문이 닫혀있었다.
입구의 문 앞에서 서성이길 20여분 정도, 옆 건물과 숙소의 건물 사이에 담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옆 건물을 통해 숙소의 현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쉽지 않았지만 프런트에 도착하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다신 늦게 돌아다니지 않을 거다.. 절대!!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는 세로 50km, 가로 30km인 동남 방향에 타원형으로 펼쳐진 화산으로 서쪽으로부터 시라봉, 기보봉, 마웬지붕 등 세 개의 봉우리가 늘어서 있다.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혹은 '하얀 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일 년 내내 산봉우리 부근에 빙하와 빙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19,710피트( 5,896m) 산이다.
킬리만자로는 여러 가지 루트가 있지만, '나도 킬리만자로 밟아봤어' 하는 코스는 말랑구게이트로 해서 만다라 산장까지 가는 7km 4~5시간의 트레킹 코스이다. 킬리만자로는 2명에 1명의 현지인 가이드가 동반하는데 입산자가 단 1명이라도 현지인 가이드가 없으면 입산을 시키지 않는다.
입구 옆에 국립공원의 관리사무소에는 안내원을 선택하여 안내원과 함께 입산 수속을 한다. 이때 산상의 각 산장 오두막을 예약하고 숙박료, 안 내료, 포터 료, 입산료, 구조용 보험 등을 포함한 모든 요금을 이곳에서 지불한다.
말랑구게이트로 트레킹을 시작하려 하는데 입구 옆에 매점이 있다. 호기심에 매점 안으로 들어서는데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우리나라 신라면이었다.
어!!! 신라면이다.
나의 외침에 매점지기는 씩 웃으면서 하단에서 김치를 꺼내 보여주고는 신라면과 김치를 세트로 팔고 있다고 한다. 김치는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었고 크기는 우리나라 피자 시키면 딸려오는 피클 담 긴용기의 크기만 했다. 한국하고 멀리 떨어진 이곳에 용기에 담긴 김치를 보고 난 어디서 가져오는 건지 궁금했는데 매점지기는 내가 궁금해하는지 알았나 보다.
한국 여자가 가져온다. 그 여자가 직접 만든다.
아하~ 아마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하는 건가 보다.
아무럼 어때~ 나는 라면과 김치 한 세트를 구입했다. 먼 이국땅에서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킬리만자로 말랑구게이크 매점에서 만난 라면과 김치라니... 감회가 새롭다.
만다라 산장까지 가는 킬리만자로 코스는 평탄하다고 소문난 곳이다. 그렇게 소문이 났으면 나도 만다라 산장까지는 끄떡없을 거라는 믿음으로 말랑 구 게이트를 통해서 호기롭게 출발했다.
현지인 산행 가이드 뒤를 따라 나는 느긋이 걷는 걸 좋아한다는 일행 1명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고 처음에 룰루랄라 걷기 시작했던 것이 점차 걸음이 느려지고 쉬길 반복하면서 힘들어졌다.
'울창한 산림, 완만한 경사길을 걷는 동안 진기한 동식물을 감상할 수 있다'는 안내장의 문구와 같이 산림은 울창했고 길은 완만했지만 경사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나한테는 울창한 산림 덕분에 하늘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진기한 동식물도 보이지 않았다. 설사 보였다고 해도 힘들어서 보지 못했을 것이다.
만다라 산장의 절반쯤 도착했을 즈음 싸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는 곳까지 도착했고 나와 일행은 점심을 먹은 후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내려오는 동안 산행 가이드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익숙한 멜로디에 한 소절 한 소절 산행 가이드를 따라 흥겨운 노래를 부르면서 내려오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다.
Jambo, Jambo bwana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Habari gani, Nzuri sana (잘 지내세요, 아주 좋아요)
Wageni, wakaribishwa (외국에서 오신 분들, 반가워요)
Kenya yetu Hakuna matata (우리 케냐는 문제없어요)
킬리만자로를 내려와 매점이 보이길래 우리나라의 시원한 맥주를 기대하며 로컬 맥주를 시켰다.
가져온 병이 시원하지 않아 가게 안을 살펴보니 냉장고 비슷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맥주는 시원하게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름을 느낀다.
한 모금 들이키는데 시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어디냐~ 목마름엔 맥주만 한 게 없다고 하던가??
비록 가고자 하는 목표는 가지 못했지만
땀 흘리고 난 후의 맥주 한 모금이면 충분한 것을...
킬리만자로 현지 가이드에게 킬리만자로 아래에 있는 마을을 구경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본인이 사는 마을은 아니지만 구경시켜줄 수 있다고 하였다.
매점을 나서니 가판대에 올려놓고 파는 작은 과일가게가 제일 먼저 보였고, 작은 마을이다 보니 가게도 소박했다.
산행 가이드가 이곳에서만 먹는다는 바나나 술을 보여주겠다면서 호기스럽게 나섰다.
본인이 사는 마을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 바나나 술을 빚고 있는지 수소문을 하더니 한 가정집에 데리고 들어간다.
'바나나 술을 판매하는 곳을 가는 줄 알았는데 현지의 가정집을 들어가다니...'
집은 정형적인 아프리카 시골집이었는데 가정집의 아낙은 본인이 만든 거라면서 커다란 잔에 바나나 술을 가져왔다. 시금털털한 것이 술이라기보다는 막걸리 발효된 것보다도 더 강하여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시작 했다. 바나나를 발효시켜 만든 거라고 만드는 과정도 보여줬는데 그 과정을 보니 두 모금은 마시기 힘들었다. 아낙이 웃으며 내가 마시고 있는 것을 계속 보고 있어서 잔을 들고 있던 나는 차마 얼굴을 찡그릴 수 없었다.
웬만하면 다 먹으려 했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남은 술은 PET병에 담아와 산행 가이드를 줬다.
사내는 좋다고 연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와~ 우리네 막걸리 마시듯 정말 맛있게 먹는다.
저녁은 스트리트 바비큐다!
시장 한쪽 구석에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면서 숯불에 구운 고기를 파는 식당이 보였다. 이것저것을 시키다 보니 한상이 차려졌고 고기를 보니 맥주 생각이 나는데 아쉽게 이곳은 술을 팔지 않았다.
고기와 야채에 불맛을 더해 어제 먹었던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더 맛있었다. 왜일까??
멋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