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차르의 호텔에서 출발한 차량은 채 한 시간이 못되어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 도착했다.
인도에서 출국할 때 여권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출국자의 캐리어를 순서대로 쌓아놓고 있었는데 짐 검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10분여를 대기하고 있어도 검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 담당 직원이 아침을 먹고 있는 중이라고 대기하라고 했다고...
한국이었다면 벌써 난리가 나고 몇몇 사람들이 소리를 버럭 지르고 난리법석일 텐데 외국이라 그런 건지, 인도라 그런 건지...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담당 직원이 아침을 다 먹길 기다리고 있었다. 40여분이 지나자 직원은 아침을 다 먹었는지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짐 검사는 시작되었다.
평소에는 짐 검사를 무척 까다롭게 한다고 했다. 짐이 엑스레이선을 통과하고 나서도 캐리어를 열어서 다 뒤진다고... 그 직원은 우리가 오래 기다린 것을 미안해한 건지 아님 그날따라 일하기가 싫은 건지 짐을 엑스레이선에 통과시키고 나서는 그냥 끝내버렸다.
허탈 그 자체.. 짐을 일일이 뒤지지 않아 좋기는 하다만 내가 기다린 40여분이 허탈해진다. 어쨌든 여권 심사와 짐 검사까지 끝내고 인도를 출국했다.
짐을 끌고 건물로 나오니 경기장 같은 곳의 맞은편에 파키스탄의 국기와 건물이 보인다.
와우~ TV에서만 보던 와가보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에서 이뤄지는 국기하강식의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와가보더를 내가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저녁이 기대된다. 분명히 나는 이곳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런데, 하늘 위에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었다. 국기하강식은 비 오면 안 할 테니 비가 그치길 기대하면서 파키스탄의 입국심사장으로 향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래서 입. 출국 시 상당히 까다롭게 군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입국 시 짐 검사를 통해 주류를 회수하고 엄마, 아빠의 이름을 써보라는 등 여러 가지 질문은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부터 아예 주류는 준비하질 않았고 엄마, 아빠 이름을 영문자로 적어놓고 외우기를 반복했다. 너무 철저히 준비한 것일까? 입국 심사할 때 내 이름만 물어보고는 다른 것은 물어보질 않았다. 휴우~~ 어쨌든 나는 파키스탄에 입국했다.
보더를 통해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걸어가는 길 (국기하강실이 열리는 장소)
차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내내 창밖으로 보이는 파키스탄의 첫 풍경은 안습 그 자체였다.
빗물이 범람하여 도로를 침수시켰는데 차와 오토바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빗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어른들은 비를 홀딱 맞으면서도 작은 바가지를 하나씩 들고 고인 물을 떠내고 있었다.
빗줄기는 거세지고 있었고 창밖의 풍경은 변함이 없었다. 잠깐의 비로도 이런 풍경을 자아내는 것인지 이전부터 비가 계속적으로 내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네 어렸을 때 비가 오면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일부러 들어가서 발로 장난치며 깔깔대던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이 곳 사람들도 빗물을 퍼내면서 짜증이 날만도 한데 오히려 서로 웃으며 퍼내고 있었고 차 안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였다.
무굴제국의 전통 건물들이 남아있다는 역사의 도시라는 라호르의 첫 잇상은 이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라호르박물관과 올드 바자르를 구경하고 이젠 와가보더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다행히 비는 그쳐있었고 국기하강식도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하였다.
파키스탄에 넘어왔으니 나는 파키스탄을 응원해야겠지??
국기하강식에 참석하기 위해 와가보더로 들어가는 길은 여권을 소지하고 몇 개의 체크포인트를 지나야 하며, 체크포인트에서는 계속해서 소지품 검사 등을 받는다. 국경이니까 당연한 절차라 생각하면서 차에서 내려 보더 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페이스 페인팅하는 곳이 보인다.
이왕이면 기분 좀 내볼까? 앞선 분들이 페인팅 중이었다. 한국분이신데 너무 들떴는지 페인팅을 하더니 돈도 안 내고 휙하니 뛰어가신다. 페인팅을 해준 사람이 당황해서 막 소리치며 같은 동양인인 나를 같은 팀으로 알고 쳐다본다. 나는 당연히 모른척했다.
어쨌든 얼굴에 하나, 팔뚝에 하나를 그려 넣고 머리에는 파키스탄의 상징인 녹색의 띠를 두르고 와가보더에 입장을 했다. 늦었다면서 얼굴에 페인팅을 하고 머리에는 녹색 끈을 두르며 연신 뛰어가는 나를 파키스탄 사람들은 신기하다면서 연신 쳐다본다. 자리를 찾아 헤맬 때도 사람들이 쳐다보고 자리에 앉아 있어도 앞, 뒤, 옆에 있는 현지인들이 계속해서 쳐다본다. 여기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보지 않는다. 그냥 대놓고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데 눈을 마주쳐도 절대 피하는 법이 없이 계속해서 쳐다보니 결국에는 내가 눈을 피하게 된다.
페이스페인팅과 녹색띠를 두른 동양인 여자 두 명을 이 사람들은 참 신기하게도 쳐다보고 있었다.
식은 시작되었고 엔터테이너라 불리는 북을 치며 응원을 펼치는 사람들과 국기를 들고 뱅글뱅글도는 외발의 사나이도 나와서 흥을 돋우고 있었다. "파키스탄 진다바드!" (파키스탄 만세)를 연신 외치며 장내는 응원 열기는 최절정에 다 단다. 흡사 우리네 야구장에 와있는 듯했다.
응원은양쪽에서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진행했고 퍼포먼스를 벌이는 군인들의 절도 있는 행동 하나하나가 박수와 환호를 일으킨다. 상단의 군인이 연신 '파키스탄'을 외치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 되어 '진다바드'를 외친다.
나도 그들과 한 목소리로 외치며 전율을 느껴본다.
파키스탄 진다바드!!
파키스탄 진다바드를 외치는 관중들
파키스탄의 국기와 인도의 국기가 함께 내려온다.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더 늦게 국기를 내리려고 하는 바람에 국기하강식이 몇 시간씩 지체되는 경우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합의를 한 것인지 동일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국기를 내리는 군인들은 매일 서로 마주 보면서 무슨 말을 할까?
한민족이었던 사람들,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각자의 국가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사람들..
흡사 우리네와 그 모습이 닮아있다.
영토분쟁 때문에 서로 긴장하며 대립하고 있는 파키스탄과 인도로 이런 작은 퍼포먼스를 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몹시도 부러운 마음만 가득하다.
관중석의 배치뿐 아니라 응원전에서도 양국의 모습은 다르다. 인도는 좀 더 부유한 느낌이라면 파키스탄은 열악한 느낌을 받게 한다. 응원전이 파키스탄은 북과 육성에 지나지 않는다면 인도는 음악과 춤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파키스탄 사람들은 그 열악함을 파키스탄 진다바드로 외치면서 극복하고 있었고 그 모습이 너무도 좋아 보였다.
어쨌든 양국의 국기는 내려왔고 잠시 열렸던 국경도 닫혀버렸다. 한 시간여를 그들과 소리치며 즐기다 보니 목소리는 갈라져있었고 내 핸드폰에 저장된 동영상은 열개도 넘어버렸다. 귓가에는 군인이 외치던 '파키스탄'의 억양이 떠나질 않는다. 즐겁고 부러웠던 기억이었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인도 쪽에서도 즐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