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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기 Sep 02. 2019

길깃으로 가는 길

이곳이 여행하기에 그리 편한 지역은 아니구나~

세계에서 가장 높고 험한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Karakoram Highway:KKH)를 쫓아가는 여정이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하이웨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고속도로가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높고 길게 이어진 자동차 도로라는 뜻이다. 가장 높이 있는 도로는 까드룽라(5,606M)와 탕그랑라(5,328M)등이 있지만, 이들은 카라코람처럼 길지가 않다.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Abbottabad)에서 중국 신장의 카슈가르(Kashugar)까지 뻗어나간 총 1,250㎞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히말라야, 힌두쿠시, 카라코람의 거대한 산맥들을 가로지르며 만들어졌으며 20여 년 동안 총 9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공사였다.  


예정된 코스라면 이슬라마바드에서 베샴, 길깃, 훈자, 쿤자랍패스를 통해 중국의 신장 카스가르까지 카라코람을 쫓아가는 코스였다. 하지만, 이슬라마바드~베샴구간이 10~12시간가량 시간이 소요되며, 베샴~길깃 구간은  검문소 5개를 포함해서 평균 시속 30㎞로 달리기 때문에 13~15시간 정도 걸리고, 베샴에서부터는 경찰이 탑승해서 구간별로 교대하거나 구간별로 경찰차가 따라붙어 같이 달리게 된다고 하여, 이보다는 수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베샴대신 바라콧으로 가는 구간을 택하여 카라코람을 살짝 벗어났다가 합류하는 코스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바라콧으로 출발을 앞두고 있는데 밤늦게 연락이 왔다.

원래 일정이었던 바라콧~길깃으로 가는 길이 도로가 손실되었고 차량이 전복되어 바라콧이 아닌 베샴으로 코스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베샴으로 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바라콧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3~4시간은 더 차에서 있어야 하며, 그다음 날 길깃으로 갈 때는 검문소가 5개에 경찰까지 대동하면서 차 안에서 13~15시간을 버틸 생각을 하니 체력적으로도 많이 딸리는 구간일 테니 말이다.

도로가 손실되고 차량이 전복되는 가장 높고 험한 길,


이곳이 여행하기에 그리 편한지역은 아니구나~


어쨋듯, 도로가 복구되어 바라콧으로 가고 마음을 가득 안고 잠을 청했다.

날이 밝아 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바라콧을 통해 길깃으로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휴우~ 다행이다.

밤에 살짝 긴장하면서 잤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그 얘기를 전해 듣자 내 얼굴에 살포시 웃음이 스며든다.




이슬라마바드를 떠난 차량은 탁실라를 지나 아보타바드를 통해 바라콧으로 갈 예정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탁실라'... 종교 쪽으로는 1도 관심이 없는 나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탁실라(Taxila)
기원전 5세기에 생겨난 유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탁실라의 마을은 불교문화의 전성기 1,000년에 걸쳐 번영하였고 예술, 교육, 종교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 인용)


탁실라의 고대 유적도시 '시르캅'에 도착했다. 시르캅은 도시 이름으로 입구에 들어서면 가운데 주도로가 넓게 뻗어있고 양쪽으로 도시가 형성되어있었다. 주 도로의 넓이는 6미터가 넘고 길이는 500미터나 된다고 하던데 아직도 발굴 중이라 일정구간까지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주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은 동서로 귀족, 서민들의 집, 상점, 사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계획도시다운 면모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반듯반듯한 사각형의 모습으로 형성된 이곳의 도시를 기본으로 이슬라마바드의 도시가 계획이 되었다고 하니 이곳이 더욱 대단해 보인다.  

그 옛날 사람들의 계획된 도시, 반듯하고 질서 정연해 보이지만 내 눈에 보이는 유적들은 한 칸 한 칸이 너무 작아 보인다. 이 작은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들의 삶은 과연 TV에서 보던 것과 같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시르캅 주도로 옆의 계획된 도시


탁실라에서 발굴된 유적들은 탁실라 뮤지엄에 보관하고 있었다. 아직도 계속 발굴 중이라 전시되는 유적들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하는데 도착했을 때의 뮤지엄은 정전이 된 상태였다. 깜깜한 곳에 선풍기조차 작동되지 않은 작은 뮤지엄에서 조금 기다리다 보니 불이 켜지고 선풍기들도 하나씩, 둘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불교문화의 중심답게 뮤지엄에는 부처의 일생을 조각한 문양이나 그림, 부처의 머리 등이 많았다.

무슬림의 신조에 볼 수 있듯이 알라 이외에는 어떤 우상도 숭배해서는 안 된다. 무슬림이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지로 세력을 넓히면서 그곳에 수용 발전하고 있던 이질적인 문화, 특히 불교나 힌두교 등의 불상이나 신상을 모시는 종교에 대해 갖가지 만행을 자행했다. 그 일환으로 불상의 머리를 동강 냈다고 하는데, 아마 그 이유였듯이 탁실라 뮤지엄에는 유난히도 불상의 머리만 전시된 것이 유독 많았다.

또한, 부처의 치아를 보관하고 있는 함이나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을 때의 모습의 기록들이 너무도 상세하게 잘 보관 있을 뿐 아니라 박물관 안의 경비원인듯한 분들이 궁금한 듯 쳐다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다가와 너무도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는데, 그 모습이 흡사 이곳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있듯이 느낄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탁실라를 나온 차량은  아보타바드(Abbottabad)를 향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 단체인 알카에다의 수장이었던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곳이며, 벨기에 여행객 6명이 총 맞아 죽은 지역이기도 한 위험한 구간이라 정차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고 했다.

차는 계속 진행하고 있었고 지도를 보고 있으니 아보타바드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차창밖의 풍경은 생각보다는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간혹 총을 옆에 차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사람들은 제작기 갈 곳을 가고 있었고 지나가는 바자르에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차창밖으로 육군사관학교의 건물이 보였다. 이곳에서 미국 특수부대에 사살된 오사마 빈라덴의 집이 불과 1.3킬로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살짝 몸이 긴장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너무 긴장했었나 보다. 생각보다 안전하게 아보타바드는 예전에 그런 위험한 순간이 있었던 곳이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아보타바드의 거리 풍경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바라콧은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숙도로 나름 깨끗하다고는 하나 전기사정이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전기쿠커를 꽂으면 숙소 전체가 정전이 되었고 에어컨을 켜면 조금 후에 에어컨이 스스로 정지하였다.

신기한 곳이다.

저녁은 먹어야겠고 전기쿠커를 꽂으면 숙소 전체가 정전이 되니 어쩔 수 없이 나가서 해결해야 되었다. 숙소 안에 있는 레스토랑도 영업을 하지 않고 있어 시내까지 나가서 다른 먹거리가 있는 지를 살펴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몇몇 사람들과 뭉쳐서 숙소 밖을 서성거려본다.

엄청 작은 마을, 레스토랑이 보이지 않는다. 앞에 보이는 호텔 안의 레스토랑도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길가에 고인 물웅덩이를 피해 가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튀김을 하는 곳이 보인다. 기름 냄새가 유독 사람을 끌어당겼는데 무엇을 튀기는지 알 것이 없어 물끄러미 쳐다보니 우리에게 주인이 먹어보라고 튀김 하나를 건네준다.

'이게 뭐지? 맛있는데???'

안에 들어간 식재료를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양파와 감자라는 결론은 냈고 우리네 입맛에 익숙한 것들을 마주하고 나니 금세 한 봉투를 사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봉투에서 하나씩, 하나씩 꺼내 먹으며 서로가 낄낄거리면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너무도 작은 마을이라 몇 개 안 되는 가게의 주인들은 우리들을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고 웃어주었다. 커다랗고 움푹 들어간 팬에 고기를 팬케이크 모양을 튀겨 파는 가게가 보였다.

고기가 무슨 고기인지 손짓, 발짓으로 확인해 본다. 이슬람이라 돼지고기는 안 팔테니 양 아니면 소일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 소고기였고. 우리는 길가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시켰고, 나온 고기 튀김은 빵이나 밥 없이는 먹기 힘들 정도의 짠맛을 자랑했다. 함께 딸려 나온 란으로 고기를 말아먹으니 짠맛이 감소되면서 맛있었다.

이래서 빵과 함께 먹나 보다. 옆 가게에서 공수해온 탄산이랑 함께 곁들이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없다.

더할 나위 없는 착한 가격이었다. 한국에서는 꿈도 못 꿀 가격으로 한 끼가 해결되었다.




차는 다시 길깃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대형트럭을 화려하게 꾸민 트럭 아트(Truck Art)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도에서도 보긴 했지만 파키스탄은 인도보다 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한참 어렸을 때 차량에 이것저것 달고 다닌 적이 있었다. 리모델링하면서 돈도 많이 처발랐는데 어느 순간 차는 차로써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그 모든 취미를 접은 적이 있다. 비록 트럭 아트는 취미는 아니겠지만 차량 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트럭 아트는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트럭 아트(Truck Art)
1950년대 중반, 카라치 항에서 북부지역과 아프가니스탄 등지로 물전을 실어 나르던 파키스탄 운전사들이 6개월여의 긴 여정 중에 고향의 향수를 달래며, 트럭에 화려한 장식과 그림으로 꾸미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하는 트럭 아트는 트럭 값보다 트럭 아트에 들어간 비용이 더 많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운전석 앞과 윗부분은 이슬람 사원이나 코란의 구절 등의 종교적 형상을, 옆면은 산과 호수, 동물 등 자연풍경을 그리며, 차량의 뒷부분은 꽃이나 나무 등으로 둘러쌍인 가운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그려 넣는다.



한참 어렸을 때 차량에 이것저것 바꾸는 리모델링을 하면서 차를 신줏단지 모시듯 했을 때가 있었다. 비용도 많이 들어갔었는데 어느 순간 차는 차로써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면서 그 모든 취미를 접었었다.

비록 트럭 아트를 취미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차량 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트럭 아트는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트럭 아트를 보고 있으면 트럭 하나하나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임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보이는 작은 그림 하나, 체인 하나 등에 그 사람들의 정성과 진심이 느껴진다.  




우리나라로 치면 파키스탄 15번 국도 '만세라-나랑-잘라드-찰라스 로드'를 통해 바부져 탑(Babusar Top : 4,150m)까지 이동하는 구간은 너무 아름답고 멋진 구간들이었다.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장엄하면서도 멋들어진 영화음악과 너무도 딱 들어맞는 풍경들이 눈앞에서 영화처럼 스쳐가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아무리 찍어도 표현할 길이 없다. 멋들어진 풍경을 사진기 안에 담고자 했던 노력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사진기는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차창밖의 풍경과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한 몸이 되어 감상하기 시작했다.

끝이 없이 펼쳐진 장엄한 산맥과 저 깊이 흐르는 강, 파란 하늘과 구름, 그리고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는 설산 등...

어느 하나 못 보면 아쉬울 풍경들 뿐이었다.

특히, 만년설을 깎아서 냉장고로 만들고 그 안에 음료를 넣어놓고 파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고는 차 안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바부져 탑에 내리는 기온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어디선가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궁금해서 나도 살짝 고개를 들이밀어 보았다. 한분이 쓰러지셨다. 아마 고산증이었을 것이다.

바부져 탑은 4,150m에 위치한 곳으로 고산증이 있는 나는 아침에 출발할 때 고산증 약을 먹었지만 2,500m를 넘어서면서부터 숨쉬기가 곤란했었다. 차 안에서도 혼자 깊숙이 심호흡을 했었고 바부져 탑에 도착해서 걸을 때도 살살 걸으면서 고산증에 대비했었는데 쓰러지신 분은 아마 그에 대한 대비를 미쳐 하지 못하셨나 보다.

이곳에 배치되어있는 관리원들이 찾아왔고 쓰러지신 분은  의식이 돌아왔다. 현지에 있는 응급센터로 이동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까지 보았는데 다행이었다. 내일은 아니지만 내일처럼 가슴을 쓰려내려 본다.

"아~ 조심해야지.. 어째 이곳은 수월한 곳이 없냐..."

샤부작, 샤부작 걸어서 앞으로 앞으로 나가본다.

설산으로 중첩을 이룬 조망이야말로 혀를 내두른다. 고지가 높은 곳임을 말하듯 기온은 많이 낮아졌고 불어오는 바람에 춥기까지 하다. 더구나 구름 속에 있는 듯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고 해가 나오지 않았다.

멋진 곳이다. 내가 걸어서 어찌 4,150m까지 올 수 있을까? 그나마 차가 있으니 내가 오지 않았을까 싶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이 있다는 탕그랑라(5,328M)에서는 고산증 때문에 거의 기절하다시피 하여서 차에서 내려보지도 못했다. 경험이 무섭다고 이번에는 미리 대비했던 만큼 나한테 쓰담쓰담을 해주고 싶다.


바부져 탑에서의  전경


바부져 탑을 지나 길은 카라코람 하이웨이로 접어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고 험한 길이라는 명성답게 날은 어둑해지지만 그 아슬아슬함은 차 안으로 고스란히 전해들었다.  

한쪽은 깊고 깊은 낭떠러지였고 다른 한쪽은 언제 떨어져도 어색하지 않게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암석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날이 환했다면 터널을 이루고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던 암석들 때문에 긴장하면서 달려왔을 텐데 그나마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라 그 긴장감이 덜한듯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터널을 이루고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암석을 보고 있지 않더라도 그 좁은 길에 끼어드는 차들 하며,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차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철렁철렁하여 긴장을 늦추진 못했다.   

그런 길을 3~4시간 달린 듯했다. 가장 높고 험한 길로는 단연 으뜸이었다.


힌두스쿠 산맥, 히말라야 산맥, 카라코람 산맥까지 3개의 거대한 산맥이 한자리에 볼 수 있는 낭가파르밧 뷰 포인터에서 잠시 차량을 정차시켜서 볼 수 있게 한다고 하였는데 뷰 포인터를 도착했을 시간이 저녁 9시로 어둠이 짙게 깔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그것이 여행인 것을...

저녁 8시쯤 도착한다는 길깃은 밤 11시나 되어서야 도착을 했고 숙소에 들어간 나는 짐도 채 풀지 못한 채 뻗어버리고 말았다. '아~ 정말 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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