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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Nov 06. 2018

결혼 후기

이제 막 결혼한지 2달 된 여자의 결혼후기 

결혼을 한지 약 2달 정도 되었다. 사실 결혼하기 한달 전쯤 부터 집을 합쳐서 살았기 때문에 같이 일상을 공유하는건 2달보다 더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하고 나서 뭔가 엄청나게 달라지거나 하는 부분은 딱히 없다. 


결혼한 직후의 신혼부부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은 바로 '결혼하면 좋아요?' 인데 나는 사실 '결혼' 전후로 뭔가가 다이나믹하게 변한게 없어서 대답이 어려웠다. 연애할때도 남편은 항상 좋았고, 지금도 좋고, 결혼해서 더더더더 좋고 막 더 좋아 죽겠고 심장 떨려죽을것같고 그런건 아니니까... 나는 올해의 지독스러운 더위 때문에 에어컨이 있는 신혼집에 점진적으로 거주 기간을 늘려왔다. 나는 이미 부모님이랑 떨어져 산지 10년 가까이 되어서 혼자서 삶을 꾸려가는건 익숙했었고, 여름의 더위 덕분에 결혼식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삶과 집을 합쳤기 때문에 결혼하고나서 무언가가 달라졌다고 할만한 것이 딱히 없었다.


'결혼해서 좋아요?' 라는 질문이 어려운 첫번째 이유는 위와 같고 두번째 이유는 막상 결혼을 하고나니 내 인생이 지금까지 내가 지내왔던 모습보다 훨씩 복잡해고 다각화 되었다는 점이 혼란스러워서 마냥 좋다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남편과 함께 지내는 것은 연애의 연장선으로 이전에 경험해 본 적 있는 종류였는데, 결혼을 하고나서 새로 생긴 남편의 가족이라는 존재.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나는 엄마아빠의 가족의 일부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나의 가정의 주인이라는 이 상황은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어서 은근히 임팩트가 컸고, 꽤 혼란스러웠다.  여전히 내 원가정에 나도 모르게 집착하는 내모습. 내 남편을 자꾸만 외부인으로 생각하려는 관성들이 내안에 남아있는걸 발견할 때 마다 당혹스러웠다. 


그래서,결혼하면 좋냐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좋은 것들이 많지만 지난 두달동안 결혼-신혼여행-명절-각종가족행사들을 경험하면서 예전에는 그냥 '엄마아빠의 딸'이었던 내 위치가 '독립된 가정을 가진 어른' 으로 바뀌는 것도, 내 인생에 처음 생긴 시가가족들 이라는 영역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분명히 결혼을 하고나서 내가 아끼는 내 사람과 일상을 같이 만들어가는 것은 연애전과는 전혀 다른 즐거움과 편안함을 주는데 문제는 이런 편안함과 즐거움보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영역들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결혼생활의 좋은 부분을 떠올리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할거냐고 물어보면 (겨우 2달 짜리 새신부라서 그럴지 모르지만) 난 다시 시간을 돌려서 돌아가도 결혼할 것 같다. 혼자서 삶을 꾸려가는 것도 그 나름의 재미와 즐거움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삶을 만들어 가는것은 혼자서는 절대 경험해 보지 못할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도 모르는 내 약한 모습을 모두 알고도 나를 조건없이 아껴주고 이뻐해주는 사람이 있고, 마음을 놓고 나를 기댈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일상을 만들어가는건 정말 꽤 멋지고 좋은 일이다.  나에게 '딱 맞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얻은 기분. 내 모든 영역을 다 알아도 전혀 문제 없는 사람이 있다는건 매우 큰 즐거움이다. 


결혼 후 첫 명절때 시가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데 이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면 전혀 올 일이 없을 동네에 와서 1년 전만해도 정말 완전 생판 모르던 분의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생경하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 생소한 감각. 결혼을 하고 난 내 삶은 앞으로 이런 감각들의 연속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나를 복잡하고 어렵게 할 것이고, 내 삶이 결혼 전과는 전혀 다른 단계?  속성?을 가진 것으로 바뀌었구나. 라는생각이 들었다.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도 혼자 살아가는게 이만하면 됐고, 별로 즐거울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던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앞으로는 뭔가 더 재밌는게 많아지기도 하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다. 


나에게 결혼은 이렇게 매우 다양한 영역들에서 적응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덮어놓고 행복하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치만 확실한건 난 지금 결혼해서 결혼전보다 재미있고, 편안한고, 행복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결혼에 대해서 물어보면 해볼만 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나는 아마 시간을 결혼전으로 돌려도 결혼 했을거라고. (물론 개인시간이 거의 없어지니까 매우 넓은집에 가거나 독립공간을 꼭 만들라는 말도 한다.ㅋㅋ) 



그러니까, (아마 이 글은 못보겠지만) 자꾸 내가 결혼해서 좋다고 말하는게 영혼이 없다고 구박하지 말어라 남편아. 다른사람이 아니라 너랑 결혼해서 좋고, 너가 아니었으면 결혼을 생각하지도 않았을테니까. 


결혼준비기간 내내 나 신경쓰고 결혼준비 신경쓰느라 너무 고생많았어. 

나랑 결혼하느라 너무 고생 많았고, 앞으로도 고생이 많을텐데 같이 힘내자 남편아. 


힘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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