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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Jun 16. 2019

남편을 놀리지 말자

존중하는 마음 가지기, 무시하지 않기.


남편은 곰돌이 같은 체형을 갖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곰돌이 같음(통통한 체형)이 보통이냐, 조금 심하냐, 많이 심하냐 차이일 뿐 일관되게 곰돌이 같다. 남편의 곰돌이 같음은 대부분의 경우에 치명적인 귀여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곰돌이 같음이 많이 심할 때는 괜찮지 않다. 몸무게나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 몸을 돌보지 않는 정도가 내가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운동하라는 이야기는 정말 꾸준히 이야기했었는데 꾸준히 내 말을 안 들어서 각 잡고 남편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돈, 시간 없음 등등 이리저리 여러 핑계를 대길래 안되면 집에서 홈트라도 해!!라고 던졌더니

‘자기 앞에서 못하는 모습 보여주기 싫어!  비웃고 놀릴 거잖아!!’라고 말했다.

엄청 당황했다. 나는 진짜 장난이었는데. 내 장난이 남편의 치부를 건들고, 쉽게 꺼내기 힘든 영역에 꾸준히 상처를 주고 있었던 거였다. 나한텐 사소했던 장난이 쌓여서 남편에게는 완성된 모습이 아니면 (있어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면) 나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니. 너무 가슴 아팠다. 저런 생각이 사람을 얼마나 주눅 들게 하는지, 일상의 여러 순간에 힘껏 일으킨 용기를 얼마나 쉽지만 확실하게 일그러뜨려 놓는지 내가 경험으로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아, 너무 속상했다. 남편을 대하는 내 모습이 저랬구나. 아 진짜 틀렸구나. 정말 잘못했다.

‘내 몸은 비루한데 이 몸으로 어설프게 운동하는 모습 보여주기 싫어. 놀릴 거잖아.’ 남편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속상함, 창피함 등등이 묻어있던 이때의 남편을 떠올리면 지금도 정말 마음이 아프다)


나는 일단 너의 몸은 비루하지 않고, (내 몸은 뭐 대단하냐! 나도 비루해!라는 위로 같지도 않은 말도 하고)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못해도 괜찮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설명하다가 퍼뜩, 내가 진짜로 해야 할 말을 깨닫고 말을 바꿨다.

‘미안해.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내가 그렇게 놀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정말 잘못했어. 앞으로는 안 그럴게. 속상하게 하고 상처 줘서 미안해. 잘못했어.’

그 날엔 우리 대화는 내 사과와 남편의 속상함을 공유하는 걸로 대화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남편이 속상해하던 모습이, 내게 뭔가를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가 사과한 것 과는 별개로 뭔가 해결되지 않은 게 있었다.

잘못했다는 말은 간단하다. 잘못했다는 말을 전함과 동시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진짜 원인을 알고 그걸 고치겠다고 결심하고, 실제로 고치도록 행동에 옮겨야 진짜 사과다.

근데 나는 남편을 상처 줬던 나의 사소한 놀림의 근본적인 문제가 뭔지 정리를 못해서 며칠 동안 자꾸 찝찝했다. 생각을 뒤져보니 근본적인 문제(및 잘못)는 남편을 무시하는 내 태도다. 남편을 놀리는 장난을 수시로 쳤던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남편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이 내 기준에 차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의 노력을 폄하하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뭔가를 했다고 할 때도 내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주의 깊게 그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운동하기 싫어서 게으름 피우고 핑계 대는 것과는 별개로(실제로 하기 싫어서 삥땅 친 것도 분명히 있음) 그가 운동하려고 노력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해 줘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내 마음이 쌓이고 내 말에 녹아 나와 남편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표현들로 드러났던 거다. 그 장난들 안에 들어있는 무시와 조롱을 남편은 느꼈을거고 그래서 창피하고 주눅 들고 내 앞에서 뭔가를 하기 싫었겠지. 내가 바로잡아야 하는 건 저런 생각이었다. 남편의 노력과 힘듦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교만한 생각. 이걸 고쳐야 했다.


내가 잘못한 지점을 명확히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술 줄이기&하루 10분 20분 움직이는걸 왜 저렇게까지 하기 싫어하지?라는 생각이 들고 진짜 이해가 안 됐다. 이미 과체중에, 심한 경우에는 경도 비만을 왔다 갔다하는 상황이라면 건강을 위해서 신경을 쓰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왜 그 정도도 못하지?라는 마음이 있었다.


근데 문득, 그냥 남편은 나랑은 다르게 진짜 운동하는 게 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든, 스스로의 의지를 갖고 몸을 움직이는 게 정말 힘든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구나. 누군가는 태어날 때 얼굴이 하얗고, 누군가는 얼굴이 검은 것처럼. 그냥 그런 차이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 꽂혔다.


남편이 나랑 다른 사람이라는 것.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도 다시 한번 우리의 차이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서 아직도 내가 알아가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너무 당연한 건데, 그걸 이제야 다시 배운다. 나랑은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고 그 차이를 존중해야 함부로 판단하고 무시하고 조롱하지 않고, 남편을 상처 주지 않을 수 있다.


아, 결혼생활 참 어렵다. 정말 내가 몰랐던 내 모습, 내 생각의 습관에 대해서도 바닥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결국 남편의 운동이 대해서는 '남편이 운동하는 것을 정말로 힘들어하도록 태어난(?) 사람이라면, 내가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응원해 주고 지지해 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내 남편이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니까. 나는 남편을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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