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몸살로 힘들어하던 남자 친구가 토요일 오후가 되어도 몸이 좋지 않다고 하길래
집에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진짜 괜찮아?'라고 답변이 왔다.
진짜 괜찮으니까 편하게 쉬고 아프지마라고 말하곤 답장을 했는데 속에서 불편한 감정이 왈칵 솟아올랐다.
그래서 곰곰이 내가 왜 이렇게 불편해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지금 기분이 불편한 이유는. 당신이 내 눈치를 보는 게 싫어서?
아니. 나는 네가 '진짜 괜찮아?'라는 말을 나에게 한 그 순간.
‘일주일에 한 번도 나를 못 만났으니, 너는 아파도 나를 보러 나와야 해 '라고 남자 친구를 힘들게 하는 여자가 된 것 같아서 불편하다.
나는 그게 남자 친구든 내 친구든 누가 됐든- 아픈 사람이 내 눈치를 보면서 힘겨워하면서 나랑 시간을 보내는 건 사양한다. 우선, 나부터도 몸이 너무 안 좋으면 데이트고 뭐고 힘들어서 집에서 쉬어야 하는 사람인데 누군가로 하여금 아파도 나가서 같이 데이트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는 게 불편하다.
너의 메시지를 보고 한동안 저 생각만 들었다.
나는 당신이 정말 바쁜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피곤한 당신이 좋은 컨디션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랑 만나서 데이트를 할 때도 당신이 정말 좋은 컨디션으로 나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는 아픈와중에도 일주일 내내 일을 해야만 했고, 몸살 때문에 일하다가 중간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였다고 말하는 사람을 붙잡고
‘네가 내 남자라면, 니 건강상태랑 상관없이 나랑 데이트 해’
‘ 네가 아픈 건 알겠지만, 그래도 나를 만나러 와’
라며 애정을 담보 삼아 누군가를 협박할 만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타인의 상황을 묵살하는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다. (사실 어떤 여자가 아프다는 남자 친구에게 저렇게 말하겠는가!)
뭔가 프로불편러 같은데, 여하튼 나는 누군가가 저렇게 내 진심을 확인하려 들 때, (그의 진심과 상관없이) 나를 아주 유아틱 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하고 불편하다.
내가 나를 보러 오지 않는 당신이 기분이 나빴으면 내가 지금 이러이러한 이유로 기분이 나쁘다고 이야기했을 것이고, 서운했으면 서운하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왜 괜찮다는 나에게 ’ 진짜 괜찮냐’고 거듭해서 물어보는 거지? 내가 내 진심을 이야기하지 않고 거짓으로 괜찮은 척했을까 봐?
내가 당신에게 내 감정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괜찮은 척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지? 내가 눈치를 봐서? 당신을 배려하느라?
연인 사이에 서로를 배려하느라 내 감정을 거짓으로 멀쩡한 척 포장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지?
나는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불편한 마음을 무례하지 않고, 정중하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상대방을 향한 배려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대방을 진심으로 귀하게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내 진심을 당신에게 정중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했으면 내 진심을 잘 이야기했을 것이다.
대체 당신 머릿속에 나는 어떤 이미지이길래, 나의 배려를 진짜 괜찮냐고 물어보는 거지?
못 만나는 게 미안해서? 그럼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음에 데이트 꼭 하자고 말하면 된다.
그리고 아파서 힘든데도 나를 보러 오고 싶었어? 그렇다면 애초에 내가 ‘당신이 아픈 상태’를 걱정하지 않게 해줬어야지.
나 지금 되게 아픈데, 이번 주에 한 번이라도 안 보면 네가 싫어할 것 같아서 억지로 나가려고 했었어 , 라는 뉘앙스를 잔뜩 풍기는 메시지가 불편한 건, 결국 아파서 나가는 게 부담된다는 당신의 진심을 나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나를 떠보는 게 불편하다. 그럼, 그 메시지를 보고 내가 나오라고 하면 진짜 나올 거였나?
자기가 편하고 싶은 지점에서는 애매하게 솔직하면서, 나의 진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이 맥락이 불편하다. 아픈 사람을 옆에 혹은 앞에 앉혀놓고 밥 먹고 차 마시는 여자는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가. 난 그렇게까지 이기적인 사람이 못된다.
되게 꼬인 사람 같은데, 나를 꼬였다고 말해도 괜찮다. 적어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꼬여있는 나를 풀어보기 위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