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과

by 하나

우리 외할머니는 음식을 잘하신다. 할머니는 식당을 하시며 평생을 살아오신 분인데 그 배포와 그릇이 남다른 대장부다. 자식과 손주들에게 음식을 먹이는 데 있어서도 대충 하는 법이 없으셨는데, 내가 육회를 먹고 싶다 하면 소고기를 직접 떼다가 큰 양푼 다라이에 육회를 해놓으시는 분이셨다.


할머니가 사주는 과일은 특히 그랬다. 지금 연세가 많으신데도 종종 직접 식자재를 사러 나가시는데, 한창 때는 직접 전국 곳곳의 좋은 곳에서 재료를 사 오셨다. (할머니 가게의 모든 식재료는 국내산일 뿐만 아니라 할머니가 고르고 고른 거래처에서 가져오는 물건들이다.) 최고 좋은 과일만 취급하는 청과상에서 항상 좋은 과일만 가져오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종종 ‘나는 우리 새끼들한테 최고로 좋은 것만 먹인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할머니가 챙겨준 음식은 모두 맛있었는데, 특히 할머니가 골라 우리 집에 보내준 과일은 항상 맛있었다. 이 과일의 비범함을 알게된건 자취를 하고나서부터다. 과일값은 생각보다 비싸서 맘 편히 먹기 힘들었다. 그나마 적당한 가격의 과일을 고르고 골라 사 먹으면 매번 맛이 없거나 내 기대에 못 미쳤다. 집을 나와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야 내가 좋은 품질의 과일만 먹고 컸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사는 과일은 맛이 없다며 엄마에게 몇 번 타박을 하면, 엄마는 작은 상자에 사과, 오렌지, 자두, 토마토 등 내가 좋아하는 과일을 택배로 보내주곤 했었다. 가끔 종종 할머니가 서울로 과일을 보내주셨는데, 어느 날 사과 한 박스가 도착해있었다. 웬 사과를 보냈냐고 물어보니 엄마는 할머니가 보낸 거라고, '우리 새끼 좋은 것만 먹고 건강하게 지내야 한다'며 시장에서 발견한 좋은 사과를 냉큼 한 박스 나에게 보내셨다고 했다. 할머니의 사과는 그 위용이 대단해서 내가 동네 마트에서 산 사과랑 다르게 향도 멋졌고, 반으로 가르면 꿀이 가득가득 차 있었다. 게으른 내가 한 달 넘게 냉장고에 넣어두고 있었어도 오래간만에 꺼내먹으면 여전히 과육이 단단하고, 상큼했다.


이제는 대학교를 다니고, 취업준비를 하고, 회사를 다니는 그 시절처럼 과일을 받아먹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생활의 구석구석을 점차 내가 책임지게 되면서 좋은 과일,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하우가 쌓여야 가능한 것인지 체감한다. 언제 어떤 과일이 맛있는지, 상품(上品)의 과일, 야채, 식자재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이런 느낌의 맛을 내려면 어떤 재료를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먹고사는 일을 자신이 주도적으로 챙기는 시간이 누적되어야만 쌓인다.


내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식구의 먹고사는 일을 책임져온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노련하고 훌륭한 음식들을 먹고 자란 나는 종종 할머니의 흔적이 묻은, 우리 집의 음식들이 생각난다. 이 음식들은 어디서 만들어 파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재료를 구해서 만들어 먹어야만 하는 음식들이다. 한참을 끙끙대다 큰 마음을 먹고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구하고, 레시피를 찾고 그 레시피를 따라 맛을 내려고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은 매우 큰 노력이 필요하다. 이 먹성 덕분에 먹고사는 일을 직접 챙기는 것이 얼마나 부지런한 일인지 알아가고 있다. 자식들 뿐만 아니라 손주들의 먹는 것까지 살뜰히 챙겨내며 멋지게 살아낸 할머니. 할머니의 평생이 참 대단하다.


우리 할머니 보고 싶다. 이번에 내려가면 생각날 때 볼 수 있도록 할머니랑 꼭 사진을 찍어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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