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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akonomist Mar 21. 2018

미국 식당 메뉴판 가격을 믿지 마라

미국 식당에서 합리적 소비자 되기


    제가 미국에 살면서 불만을 느끼는 문화가 하나 있습니다. 식당 가격표 문화입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기분이 찜찜합니다. 꼭 사기를 당한 것만 같습니다. 왜냐고요? 미국에선 식당 메뉴판에 적힌 가격과 밥을 먹고 실제 지불하는 가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스파게티집에 갔다고 합시다. 메뉴를 봤더니 까르보나라 옆에 $10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까르보나라를 먹고 내는 돈은 $10달러가 아닙니다. 계산대에서 지불하는 돈은 세금 9.25%(제가 사는 동네 기준)에 팁 20%를 더해 $13.1가 됩니다. 메뉴판에 적힌 금액보다 31%가 증가합니다.

세금과 팁을 더하면 가격이 더 증가한다. (Total = subtotal + tax + tip)

        미국은 한국과 달리 메뉴판 가격에 세금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애초에 메뉴판을 볼 때 세금과 팁을 고려하면 되지 않냐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마치 고장난 시계를 보는 것 같습니다. 시계가 고장 나서 원래 시간보다 10분 늦게 가는 거죠. 물론 머릿속으로 10분을 더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잘못된 시간을 믿게 됩니다.


    이게 제 문제만은 아닙니다. 미국인조차 저랑 똑같은 행동 패턴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세금을 소비자가 볼 수 있도록 가격에 미리 포함해 놓느냐 안 해 놓느냐에 따라 소비자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연구자들이 3개 슈퍼마켓을 정해, 한 슈퍼마켓 진열대 물건에 세금(7.375%)을 포함한 가격표를 걸어두고 나머지 두 슈퍼마켓에선 세금을 뺀 가격표를 걸어두었습니다. (세금을 뺀 가격표를 걸어놓은 슈퍼마켓에선 계산대에서 물건을 계산할 때 세금이 부과됩니다.) 매를 미리 맞을래, 나중에 맞을래와 같은 문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실험 결과 세금을 포함한 가격표를 사용한 슈퍼마켓 매출이 다른 두 곳 보다 8%나 줄었습니다. 보이는 가격이 더 비싸니까 사람들이 덜 소비했다는 말입니다. 최종적으로 지불하는 돈은 같은 데도 말이죠. 소비자들이 세금에 대해 무지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연구자들이 실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8개 중 7개 품목에 대해 세금 부과 여부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실험 결과가 신빙성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데이터도 들여다 봤습니다. 바로 술에 붙는 세금인데요. 미국은 주류에 두 가지 세금이 부과됩니다. 하나는 특별소비세(excise tax)고, 다른 하나는 판매세(sales tax)입니다. 특별소비세는 주류나 담배 같은 상품에 붙어서 정부가 일정 품목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쓰입니다. 특별소비세는 술 가격에 미리 포함되지만, 판매세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맥주를 사려고 편의점에 갔습니다. 코로나 한 병에 $5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5는 특별소비세가 미리 포함된 가격입니다. 그리고 이 코로나를 계산대로 가져가 계산하면 최종적으로 지불하는 돈은 $5+판매세(8% 가정)=$5.4가 됩니다.  

맥주 한 잔에 포함되는 세금


    맥주도 첫 번째 실험처럼 가격에 미리 포함된 세금(특별소비세)과 나중에 계산되는 세금(판매세)이 존재합하는거죠. 연구자들은 1970년부터 2003년 동안 특별소비세와 판매세 변화 중 어떤 게 사람들의 주류 소비량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비슷한 증가량이라도 판매세(나중에 계산됨)가 증가할 때보다 특별소비세(가격에 미리 포함)가 증가할 때 주류 소비량이 더 큰 폭으로 감소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금이 가격에 미리 포함됐을 때 소비자들은 세금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말입니다.  


    전통적인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정부가 물품에 세금을 매기면 판매자와 소비자가 세금 부담을 나눠 갖게 됩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사려고 하는 물품에 세금이 붙으면 가격이 더 비싸지기 때문에 원래 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그 상품을 사야 합니다. 또 판매자 입장에선 세금으로 인해 상품 가격이 올라가면 판매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세금 부담을 지게 되죠.


    하지만 어떤 물품에 세금이 부과돼서 더 비싼 가격에 팔려도 소비자 수요가 줄지 않는다면 소비자가 모든 세금 부담을 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웃는 건 판매자와 정부 쪽이죠. 그야말로 소비자만 호구 되는 겁니다.


    한국은 마트에서 쇼핑을 하거나 식당 메뉴판을 볼 때 가격에 세금이 대부분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속을 일이 거의 없죠. 하지만 미국은 다릅니다. 대부분 마트는 세금을 뺀 가격표를 걸어두고, 거의 모든 식당 메뉴판도 세금을 뺀 가격을 적어 놓습니다. 그러니 미국에서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보이는 가격보다 10% 정도 더 비싸다는 사실(식당은 팁 포함 30%)을 항상 인지하셔야 합니다.

미국 판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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