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기 싫은 사람

Cabernet Sauvignon

by 낙낙정효

혼.와.(혼자 와인 마시기)에 빠지는 건 사실 필연적이었지.

와인을 좋아하는 동시에 나보다 와인을 좀 더 잘 알고 대화도 통하고 그리고 시간도 맞는 그런 친구는 세상에 없기 때문에.

혼자서 와인을 쉽게 딸 수 없는 이유는 딱 하나, 한 보틀을 다 비울 수가 없다는 점에 있는데 이건 이틀에 걸쳐서 마시면 되는 거였다(명쾌-)


현재까지는 혼자서 가장 많이 마셔본 품종은 까베르네소비뇽이다. 품종 구분을 못해서 한동안 까쇼만 파면서 느낌을 알아보려고 노력한 탓도 있었고 또

사람들과 어울려 마실 때 까쇼는 자주 제외되곤 하는데, 그건 아마 같이 마실 좋은 와인이 이 세상에 너무나 많기 때문이겠지.


어릴 때 드라마에서 본 멋진 와인바에 앉은 주인공이 까베르네소비뇽을 주문하는 그런 장면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에 담아왔고, 발음마저 고급진 이 단어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여러 번 맛을 경험해 본 현재 내게 까쇼는 혼자 앉아 와인을 마시는 싱글의 청승스러움에 가깝다. 뭔가 산뜻하고 가볍고 쿨한 느낌보다는 질척이고 눅눅한 느낌에 가까운 것.


지방이 고향인 나는 성인이 됨과 동시에 혼자 생활을 해왔는데 부모님 곁을 떠남으로써 얻은 자유 안에는 슬며시 외로움도 끼여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마음은 친구들과의 약속이 주말마다 풀(full)로 차 있던 20대에도 같았는데, 그 마음이 바로 고향을 떠나올 때 슬쩍 껴든 외로움에서 비롯되었음은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 친구들과의 약속도 뜸한 나이가 되어서 그런 마음에 대한 사유를 깊게 해볼 수 있게되어 뒤늦게야 그 근원을 굳이 찾아보았던 것은 절대 아니고, 그저 어느 순간에 아, 이게 그 외로움이었구나 하고 알게되었다.


나이가 어느정도 들어보니 부모님의 단속 안에 사는 어린 여자애들의 자유롭지 못함이 매력적으로 보이고 집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의 외로움에 대한 무지가 부럽다. (나도 고향에 가면 가족도 친구도 모두 있지만 -) 집에 가기 싫어했던 나의 외로움이 술에 취해 의도치않게 툭 튀어나왔을 때 누군가는 나를 질척이고 매력없는 그런 이미지로 보지는 않았을까, 뒤늦게야 이런 괜한 반추도 해보는 것이었다.


습기 가득한 비오고 흐린 날, 가라앉은 기분으로 귀가하는 내 마음이 까베르네소비뇽에서 풍기는 특유의 오크향과 많이 닮은 것 같다. 좋아할 수 없지만 잊혀지지도 않는, 또는 떼어내지지 않은 찌질함 같기도 한, 그런 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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