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고 싶은 사람

Pinot Noir

by 낙낙정효


2013년에 내 사회생활 역사상 가장 완벽한 팀을 만나 1년을 보냈었다. 팀원 한 명 한 명이 훌륭했던 것은 아니고 (오히려 마찰 요소가 많았다) 오롯이 과장님(공무원이라서 팀장이 아닌 과장) 한 분의 리더십이 만든 팀워크였고 그 분 후로는 여태 그런 비슷한 사람도 보지못했다.


40대 초반에 중앙부처 과장으로 승진해 우리 위원회에 파견나온 분이었는데 당시 내가 일하던 곳이 위원회여서 안건 작업과 회의가 주 업무였다. 우리 과에서 국정과제와 직접 관계있는 안건을 맡게되어서 모든 과원이 투입되었는데 적절한 업무분장과 적절한 보상으로 과원들을 끌어가는 그 리더십이 정말 신통했다.


우리 과에는 공공기관, 연구기관에서 파견나온 세 명과 각각 다른 중앙부처의 사무관 두 명, 그리고 위원회 소속인 나 이렇게 있었는데 기관 지위상 갑을이 섞여있고 업무스타일이 모두 달라 잡음 없기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그런데 안건이 완성되기까지 그 어떤 마찰이나 불만도 없었고(피로감은 있었겠으나) 그 프로젝트로 우리는 함께라면 어쩐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찐한 동지애가 생겼던 것 같다. 과장님은 업무에 관해서 유연성이 있었으나 디렉션은 언제나 명확했다. 팔로워가 업무에서 성과를 내도록 은근히 끌어주고 성취를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신 것 같았다.


나는 피노누아를 마실 때 매번 그 과장님이 생각난다.


위원회 안건을 마무리하고 회식으로 호빗을 보고(귀엽게도 호빗 시리즈는 언제나 우리 과 모두 함께 보자고 했었다) 무려 드라이에이징스테이크를 먹으러 간 날에도 우리는 피노누아를 마셨고, 과에 한 분이 책을 출간했을 때에도 모여서 피노누아로 축배를 들었었다.

우리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난 후에도 7년 여 간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꼭 만났는데 그 만남을 매번 짇접 제안할만큼 인연을 쉬 넘기지 않는 분이셨다.


그 때의 나는 피노누아도 처음 들어보고 와인도 접한 적 없는 조무래기여서 그냥 주는대로 마셨는데 이제와 피노누아를 여러 번 접해보니 당시 과장님 모습이 많이 오버랩된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떨어지는 매너를 가진 과장님과 많이 닮은 느낌. 컬러부터 아로마, 산도, 바디감, 피니시까지 지나침없는 피노누아는 맑지만 순수하지는 않은 느낌이 있는데 그 순수하지 않음이라는 것은 서툴지 않음에 거의 가깝다.


나도 이직을 해버린 이제는 우리가 다시 모여서 피노누아 한 잔 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인연이란게 언제까지고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애쓰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요즘은 그래서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서까지 애틋함이 있다. 언제고 이 사람들과도 멀어지는 날이 오겠지 생각하면 슬퍼지는 것이다. (늙었나)


누군가에게 어떤 이미지이고 싶은가 꼽자면 나의 이상향은 피노누아에 가까운 듯한데, 같이 있어도 이미 그립다고 징징대는 이 질척이는 성미로는 어림도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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