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솔비 Nov 24. 2020

아이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나간다는 게 무섭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1년째 한국에 못 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만 세 살, 한 살의 손주들이 그리운 나의 엄마 아빠는, 매일같이 우리 가족의 사진 공유 앱을 보며, 이틀에 한 번씩은 비디오 전화를 한다.


  엄마와 통화를 할 때면, 아이들 이야기뿐이다. 아이들도 반갑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핸드폰을 안아주거나 핸드폰 화면에 뽀뽀를 하기도 한다. 그 덕에 엄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시간은 늘 뒤로 밀려난다.




  아이 방에 커다란 인형을 놔두겠답시고 핸드폰으로 H&M HOME 어플을 눈이 빠지게 들여다봤던 날이 있다. 고르고 골라 공룡(아마도 티라노 사우루스) 인형을 골랐다. 잘 샀다 생각하며 어플을 끄고 아무 생각 없이 한국 포털 사이트를 열고 메인 뉴스를 들여다보는데, 글쎄 내일이 추석이 아닌가! 엄마한테 추석 선물 보내지도 않았는데!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것 마냥 공룡 인형을 사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던 나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더 잘 챙겨드려야 되는데, 난 아이 생각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내 가족, 내 아이들이 내 삶의 중심이 되어간다. 엄마는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고, 늘 감사하고,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엄마를 떠올리는 시간은 점점 더 줄어간다.

  




  그런 나 자신을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은 나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날 떠나가겠지. 나보다도 자신들의 파트너, 자신들의 아이들이 더 소중해지는 날이 오겠지. 내 생일 선물을 고르는 시간보다 아이 방에 놓을 인형을 고르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그런 날이 오겠지.


  나 또한 그렇게 엄마의 품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구축해왔고, 아이들 또한 언젠가 나의 품을 떠나 자신만의 길을 독립적으로 만들어가길 바란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나간다는 게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지금은 내 삶과 아이들의 삶이 뒤엉켜 있는데, 언젠가는 내 삶과 아이들의 삶이 분리된다는 사실이, 당연하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동시에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물론 함께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밀어주고 당겨줄 것이고, 서로 손을 잡고 걷기도 할 것이다. 독립이지 이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두려움이 밀려오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두려움 때문인지, 상처 받기 싫은 방어적인 마음 때문인지, 난 '내 삶을 이어나가야 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나의 모든 것을 베풀어 사랑하고 키워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내게 잠시 맡겨진 선물과도 같아서 언젠가 이 세상에 돌려놔야(?) 한다는 그 진부하지만 촌철살인과도 같은 표현을 나는 종종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아이들이 내 곁을 떠나고 난 후의 내 삶이 여전히 풍요로울 수 있도록,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는 시간들도 외롭지 않도록, 조금씩 준비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백종원과 우리 남편의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