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 못하는 사원이었다.
아니, 지금도 일 못하는 사원일지도 모른다.
회사 일에서 흥미를 찾지 못하고, 그저 월급을 받기 위해, 적당히 사람들 만나기 위해 회사를 다녔다.
연공서열적인 부분이 남아있는 일본 회사였기에, 어느 정도 위치까지는 (웬만하면) 때가 되면 올라가기에, 승진에 대한 열망도 그다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저 그런, 그냥 사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새로운 여성 상사가 생겼다.
30대 후반으로, 그 직위로서는 젊은 축에 속했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있는 워킹맘인데, 빠른 승진이 대변이라도 하듯, 일에 매우 열성적이었다.
그 분과 함께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나는, 왜인지, 그분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이 잘 보이고 싶었다는 마음이 좀 미묘한데, '그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라기보다는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쪽에 더 가까웠달까.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새로 오신 분이기에, 지금까지의 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이었기에, 이제까지의 내 이미지를 바꿀 찬스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은 그녀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을 수도 있고, 육아는 육아, 일은 일대로 잘 처리하는(것 같은) 그녀를 멋대로 가까운 롤모델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뒤로 나의 일하는 모습은 변했다.
어떻게 하면 그분에게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보고를 할 때는 좀 더 똑 부러지게 이야기해야지.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야지. 좀 더 알기 쉬운 자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프로젝트에는 이게 부족하니 이걸 하자고 이야기해야겠다 등등...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일 잘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마치 일 잘하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 일 잘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행동했겠지? 하면서 말이다. 운 좋게도, 상사와 한 일은 내가 여러 번 해본 분야의 일이었고, 상사는 나를 정말로 일 잘하는 사원으로 생각해 준 것 같았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저자는, 변화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한다' + '작은 성공들로 스스로에게 증명한다'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변화란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말이다.
믿는 것부터 시작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이런 사람이다 하고 스스로가 믿는 것부터가 변화의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그 동기가 인정 욕구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그 믿음이 생각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행동을 변화시킬 것이다.
여담. 일을 잘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시도를 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도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까지 게으름 피워왔던 부분도 눈에 띄고, 열심히 하는 자세나 습관도 몸에 익지 않아서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기도 한다. 마음먹기가 모든 변화의 시작이지만, 변화된 모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 잘하는 척'이 통하는 것도 순간이다.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