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힘들다. 구구절절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보다 힘든 건 워킹 대드(working dad)란 걸, 직장 선배를 보고 알았다.
(여기서 워킹 대드는, 워킹맘처럼 육아를 담당하며 회사에 다니는 아빠라는 의미로 썼다.)
바쁘기도 바쁘고 늦게까지 일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던 회사에서 일했던 무렵, 육아를 전담하던 워킹 대드 선배가 있었다. 만 40살 무렵 결혼을 한 그 남자 선배의 부인은 대학교 교수였다. 일을 즐기는 커리어 우먼이었던 그분은 만 40이 넘어 첫 출산을 하고, 출산 한지 한 달 반 만에 회사(대학교)에 복귀했다. 육아 전담은 회사 선배의 몫이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유치원생이 된 아이를 발레 학원에 데려다주는 일까지, 선배는 여타 워킹맘 못지않게 육아에 진심이었고, 멋들어지게 해냈다.
하지만 주변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그 나름대로 100% 주어진 일을 해냈지만, 늘 120%의 성과를 내기를 바라는 회사나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지 않았다. 그가 어느 정도의 육아를 해내고 있는지는 누구도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같은 나이대의 아이가 있는 다른 남자 사원들 중 그 선배만큼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정말 어처구니없이 바쁘던 시기가 있었다. 입찰을 따내기 위한 제안서를 완성하기 위해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했다. 그 선배 또한 그랬다.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던 어느 날, 상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이은 야근과 주말출근에 화가 난 선배 부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전날 밤 선배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사는 선배 가정의 평화를 위해 당분간은 선배가 가정과의 밸런스를 생각하며 일을 하도록 배려해주자고 했다.
이 웃픈 소식은 순식간에 부서 안에 퍼졌다. 놀다가 늦게 들어간 것도 아니고, 일 하다가 늦게 들어간 건데 어떻게 쫓아낼 수가 있냐며 사람들을 부인 흉을 보았다.
하지만 난 선배 부인의 심정도 알 것만 같았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한쪽이 늦게까지 일을 하면 남은 한쪽은 좋든 싫든, 그 사람의 상황이 어떻든 육아를 담당해야 한다. 한 명이 일을 한다는 건, 다른 한 명은 일을 할 시간을 잃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배 부인 또한 논문 작성 때문에 한창 바쁜 시기였고, 선배 부부는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가며 일을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회사는 육아 중인 사원에게 친절한 회사였다. 육아 휴직 기간도 충분하고,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축근무도 할 수 있으며, 금전적인 지원도 있다. 이 모든 규칙이랄까 권리는 남녀 사원 모두에게 해당되지만, 대부분은 여성 사원이 이용하며, 사원들 대부분이 이 권리의 향유자는 여성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끔 늦게까지 남아있기라도 하면, 어서 아이 데리러 가야 하지 않냐고, 시간 괜찮냐고 챙겨주는 사람들이었지만, 선배에게 그런 이야기를 걸어주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선배 같은 워킹 대드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런 카테고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세상은 변하고 있고, 이 이야기는 일본에서도 내가 다니던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어딘가에 여전히 선배 같은 워킹 대드가 또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워킹맘으로서 나는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일하고 있지만, 워킹 대드는 사회적 인식의 결여 속에 워킹 맘보다 더 많은 장벽에 부딪히고 있지는 않나 싶다.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사회를 꿈꾸지만, 그 사회 속에 워킹 대드의 존재를 잊고 있지는 않았나, 나의 좁은 시야에 대해서도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