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정 출산기③

남편과 함께한 한국 원정 출산기

by 오솔비

"저기, 예정일이 ○월 ○일인데, 분만 예약 가능한가요?"

한국 원정 출산을 결정하고 제일 먼저 한 건, 한국 본가 근처의 산부인과를 검색해서 분만 예약이 가능한 지 전화를 돌리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서는 임신 10주 차에 분만 예약을 했기 때문이다.


첫째를 임신하고 일본의 산부인과에 다닐 때, 8주 차에 심장소리를 확인하자마자 의사 선생님은 근처 산부인과 리스트를 내밀며 늦어도 15,6주 차까지는 분만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분만 예약이라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급히 인터넷 검색을 했고, 그제야 무통분만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무통분만을 하는 곳이 그다지 많지 않다.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엄마가 된다는 고릿적 신념도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것 같고, 수요가 적으니 무통 분만 대응을 하는 병원도 적고, 그 때문에 무통분만에 대한 인식 자체도 널리 퍼져 있지 않다.

도쿄에서 24시간 무통 분만을 하는 병원은 한자리 수에 지나지 않는다. 인기가 많은 곳은 임신 10주 차쯤이면 이미 예약이 가득 찬다. 물론 가격도 비싸다. 대개 자연 분만 비용에서 10만 엔~20만 엔 정도가 추가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무통 분만을 한다는 사실이 참 반가웠다. 분만 예약 또한 전화를 돌린 집 근처 병원 세 곳에서 모두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니 뭐랄까, 그런 질문 자체가 흔하지 않다는 듯한 말투였다. 일본의 한 병원에 분만 예약이 가능하냐는 전화를 걸었을 때, 예정일을 전해 듣고는 "대기자 29명인데요."라는 대답을 들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걱정했던 병원 문제가 해결되고, 난 한국 원정 출산을 결정하고 일주일 뒤, 남편과 첫째 아이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은 나와 첫째 아이를 데려다준 후 일본에 돌아갔고, 예정일 2주 전에 한 달 체류 예정으로 한국에 왔다.

그때부터 나의 남편 전담 통역사 생활이 시작됐다. 남편은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안녕하세요', '맛있어요', '건배', '추워', '아이고' 정도.

다 같이 밥을 먹을 때면, 아빠가 하는 말, 남편이 하는 말, 통역하느라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밥을 먹을 때에야 술이 있으니 괜찮았는데 밥 먹고 나면 어색한지, 아빠는 이거라도 보라며 텔레비전에서 일본 채널을 틀어 주었다. 그렇게 남편은 한국에 와서 일본에서도 안 본`고독한 미식가`를 정주행 했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도, 남편이 평일 오전에 카페에 가서 일을 하는 시간이 내게는 휴식시간이 되었다. 남편이 항상 가던 집 근처 카페의 점원들은 한국어를 못하는 남편이 들어오면 왠지 모르게 긴장하는 듯했다지만.

남편은 오후엔 첫째 아이를 데리고 근처 놀이터에 가거나 슈퍼에 가서 장을 보기도 하곤 했는데, 매일같이 다니다 보니 마트의 아주머니, 아저씨 들이랑도 친해진 듯했다. 어떤 때는 마트 아주머니가 이게 제일 맛있는 칼국수라고 했다면서 포장된 칼국수를 사들고 오기도 했다. 말도 안 통했을 텐데 말이다.

통역은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행복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엄마와 아빠가 도와주니 몸에도 마음에도 여유도 생기고, 남편과도, 아이와도 더 돈독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기가 태어나기를 남편과 함께 기다렸다.








일본에서 낳은 첫째는, (거의) 고통 없이 낳았다. 아이 머리 크기가 크다는 이유로 예정일 일주일 전에 유도 분만을 했는데, 진통이 오고 나서 얼마 안 지나서 무통 주사를 놓았고, 그 효력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지속되었다.

한국도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분만 후기를 찾아보는데 '무통 분만 후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음에도 분만의 고통에 대해서 줄줄이 적혀있는 게 아닌가! 내가 다니는 병원이 특별한가 싶어서 다른 병원의 후기를 읽어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한국에서 출산한 친구에게 출산 과정을 세세하게 읊어달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힘을 주기 위해서 마지막에 마취 효력이 떨어져도 추가로 주사를 놔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게 처음도 아닌데, 처음처럼 두려웠다. 아니, 처음보다 더 두려웠다.


조마조마하며 진통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아기는 태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예정일에 유도분만을 했다.

남편과 함께 아침에 병원에 갔다. '분만실 밖에서 잠깐 기다리래. 준비하는 데 30분 걸린대. 신발은 저기에 벗어 두고.'까지는 괜찮았다. 유도제를 맞고 서서히 진통이 시작되기 시작했는데, '진통이 올 때는 이렇게 마사지하래. 진통이 올 때는 이렇게, 진통이 안 올 때는 이렇게. 아니, 그렇게 말고 이렇게.'부터는 슬슬 통역이 귀찮아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무통 주사 놔준대. 밖에서 잠깐 기다리래.'에 이르러서는 처음 겪어보는 진통에 온 몸이 떨리는 와중에 이를 악물어가며 통역을 했다. '이제 곧 나올 거 같으니까 나가서 수술복으로 환복하고 오래.'에 이르러서는 내가 한국어를 하는 건지, 일본어를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무통 주사를 맞고 30분 뒤에 둘째가 태어났다.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

"무통 주사 효력을 느낄 새도 없이 태어났네."


그래도 유도제를 맞고 세 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태어나 준 아이 덕분에, 무사히 남편과 함께 출산을 겪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2박 3일, 조리원에서 열흘간을 남편과 함께 지냈다. 병원도 조리원도 일본의 병원 생활과는 많이 달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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