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육아 휴직 이야기
첫째가 16개월, 뱃속의 아기가 곧 9개월을 맞이할 무렵이었다.
그 당시 난 첫째 아이를 종일 집에서 혼자 보았는데, 배가 점점 더 나오면서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아주는 것도 쉽지 않았고, 아이 식사 챙겨주다가 내 식사는 뒷전이 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왕성해진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내가 충분히 채워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첫째 아이한테도, 뱃속의 아이한테도, 내 몸에게도 미안했다.
고민 끝에 나는 한국 원정 출산(사토가에리 출산)을 하기로 했다.
출산 전 2달, 출산 후 2달, 총 4달을 한국의 본가에서 머물기로 했다.
한국행을 결정하긴 했다만,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남편을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에서 배제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첫째는 일본에서 낳았다. 이번에도 남편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일본에서 사토가에리 출산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예정일이 가까워졌을 때, 또는 진통이 시작되고 나서야 연락을 받고 부인에게 향한다. 남편은 국제선을 타고 와야 하는 데다, 둘째는 진통부터 출산까지의 시간이 첫째보다 짧기 때문에, 진통이 오고 나서 연락을 하면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도착할 것 같았다.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남편이 한 달간의 육아휴직을 받기로 했다.
일본 법률상으로는 남성도 여성과 동등하게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다. 기간은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만 한 살이 되는 날까지의 1년간. 육아휴직 급부금 또한 여성에게 적용되는 조건과 같다. 처음 6달은 월급의 2/3가, 그다음 6개월은 월급의 1/2이 지급된다. 남편 회사 같은 경우, 위와 같은 나라의 법률에 더해서,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의 기간 중에서 총 3년의 육아 휴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남편 회사에서 육아 휴직을 취득하는 남성은 거의 없었다. 육아 휴직을 받는 남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나, 2017년 일본의 남성 육아 휴직 취득률은 5.14%에 지나지 않는다. 주변에서 남성 육아 휴직자를 찾아볼 수 없었던 내게는 5.14%도 놀라운 수치였다. 취득 기간도 문제다. 일례로 일본생명보험이라는 회사는 남성의 육아휴직 취득을 의무화했는데, 취득자 1600명의 평균 취득 기간은 일주일이었다.
회사 분위기 때문에, 업무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남성 육아 휴직자가 쉽게 늘어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남성의 육아 휴직 취득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IT기업에서 시스템 관련 영업일을 하고 있던 남편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담당 고객이 있었고, 한 달은 어찌 보면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넘기지 않아도 되는 마지노선 같은 것이었다. 동료 직원들에게 일을 나누고, 한국에서도 컴퓨터로 업무 진행 상황을 체크하기로 한 뒤 휴가를 받았다.
남편은 예정일 2주 전부터 한 달간 한국에서 머물렀다. 엄밀히 말하면, 육아 휴직은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부터 받을 수 있는 데다가, 급료도 안 나오기 때문에(육아 휴직 급부금이 월급의 2/3 정도 나오긴 하지만), 남편은 남아있는 연차 40일 중 20일을 사용했다.
또, 내가 한국에 있던 기간 중 일본의 골든위크(5월 초의 장기 휴일)가 있었기에, 아기가 생후 한 달 무렵 다시 한국에 열흘 정도 체류했다. 내가 한국에 들어갈 때와 다시 일본으로 향할 때도 동행해 주었기에 남편은 4달 동안 총 4번 한국과 일본을 왕복했으며, 합쳐서 한 달 반경을 한국에 체류했다.
육아 휴직 한 달.
고작 한 달이지만, 여성이 쉬어야 하는 기간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게 느껴지지만, 나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전례가 없는 곳에서, 그 누구도 육아 휴직을 받는 남성이 없는 곳에서, 처음으로 육아 휴직을 신청하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자기 일을 직장 동료들에게 부탁하면서 눈총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출산과 육아에 남성이 참여한다는 인식이 아직 부족한 이 사회에서, 작지만 첫 발을 떼어준 남편에게 고작 한 달이냐는 불만보다는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게다가 남편은 한국어를 하나도 못한다. 말 하나 통하지 않는 곳에서 한 달을 머물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통역해 주지 않으면 아무 말도 못 하는 남편 덕에 나는 아이가 나오는 그 순간까지 남편에게 통역을 해주어야 했다. 그 이야기는 또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