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재 산문 / 시 선의 시선
24년을 정리하며 독서 기록 앱을 켰다.
다 읽어낸 책들의 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표지들만 봐도 모든 페이지를 다 아는 것처럼 느껴지다니, 살짝 지루하기까지 하다.
나는 ‘아는 것처럼‘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언제나 남겨둔다.
시험 범위를 다 봤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여 유심히 보지 않은 구석의 몇 줄 때문에 틀리곤 했으니까.
그런데, 요즘의 나는 우를 범한다.
다 안다고 생각한다.
다 아는 사람들이, 다 알 것 같은 말을 한다고 말이다.
이게 내가 얼마나 혐오하는 모습이었나.
다 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새 페이지를 발견하는 건 내 몫이고,
이 문제를 방치한다면 내가 혐오하는 인간으로 커 갈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리는 새해.
다 읽지 않았을 페이지 한쪽쯤은
다 읽었어도 어느 구절은 또 좋아서 끌어안고 침대에 누울 수 있는
여느 날들이 흔한 다정한 한 해이길 바란다.
책을 새롭게 보는 건 쉬운데(...)
다 아는 사람들의 새로운 페이지를 펼치는 게 문제지 뭐.
si, sun
취향과 즉흥적인 독서와
언뜻언뜻 머리를 쳐드는 지혜와
섬세한 미래를 껴안고
사방에서 떠드는 것들에 엿을 날려줄
두 에디터의 사유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