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고

낙서재 산문 / 한글의 한 글

by 낙서재

오늘의 낱말 : ‘근황‘



한 해의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앞두었던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지난 한 해를 돌아봤습니다.

그날은 평생을 함께 살붙이며 지냈던

가족의 기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한 해를 돌아보는 과정을 경유해

과거의 과거로까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녀가 떠난 건 고작 5년뿐이 지나지 않았는데

함께한 추억까지 가다 보니

꽤 멀리 떠나야 하는 과거가 되어있었습니다.

함께 살아온 20년이 넘는 시간보다 떠난 5년에

쌓인 것들이 더 많은 기분이었습니다.

그저 물 흐르듯 흘렀다고 느꼈던 시간인데,

그 사이 수많은 일들이 있던 겁니다.




문득, 새롭게 업데이트된 이 소식들을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으며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벅차게 사랑스러운

당신의 증손녀가 태어났다고.

언제나 칭얼거리며 품에 안겨 다니던 늦둥이 손녀는

이제 제법 숙녀가 되어

1인분의 역할을 해 나아가고 있다고.




이 이야기들을 전하면 그녀가 보여줄 환한 미소를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전할 수 없는 근황이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또다시 한번 진짜 이별을 했습니다. 이별을 알고 있으면서도 연락하지 않지만

아직 같은 세상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있는

누군가처럼 느끼기다가,

이렇게 또다시 이별하는 순간이 문득 찾아오곤 합니다.

몇 번을 반복해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감정입니다.

그저 건강한 이별의 완성으로 가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봅니다.



아직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과거에 함께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 오늘의 글을 바칩니다.




취향과 즉흥적인 독서와

언뜻언뜻 머리를 쳐드는 지혜와

섬세한 미래를 껴안고

사방에서 떠드는 것들에 엿을 날려줄

두 에디터의 사유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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