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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호 Feb 05. 2024

“나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이제 먼 길을 떠납니다”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5) 이진희 주엽커뮤니티센터장

이진희 주엽커뮤니티센터 센터장


[고양신문 사람도서관] 주엽동 마을공간이자 사랑방으로 큰 역할을 해주었던 주엽커뮤니티센터가 7월 말 위탁이 종료되며 새롭게 주엽1동 주민자치회가 운영을 맡게 되었습니다. 금번 사람책 인터뷰는 초기부터 센터를 맡아 운영했던 이진희 센터장님을 통해 마을공간이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녔는지, 위탁이 종료되거나 종료예정인 단체나 기관실무자들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여쭙고자 마련했습니다.




“주엽커뮤니티센터는 주민들이 먼저 만들어 달라 요구한 공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공간과 시설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저마다 애착과 책임감을 갖고 사용하고 있고, 공간을 관리하는 담당자와 시행정도 주민들을 신뢰하였기에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은 동네 사람이 주인이 되는 곳이 되었습니다.”




■ 간단한 개인소개와 주엽커뮤니티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 길동에서 96년에 고양시에 넘어왔습니다. 그 이후 계속 아이를 키웠어요. 딸 둘에 아들하나 그렇게 세 명이나. 당시 100일이 갓 지난 셋째를 업고 다니다 보니 정발산동에서는 주민들이 저를 늘 애기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 육아 덕분에 마흔이 넘어 남들보다 늦게 일을 시작했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마을에서 ‘교실 밖 열린체험학교 누리세상’을 운영하였습니다. 엄마들 인문학수업과 아이들 체험학습을 주로 하는 곳인데 미술사, 음악사, 한국사 등 수업을 꾸렸죠. 엄마들한테는 수업료로 5천원씩 받았습니다. 당시 그 사업으로 지금의 마을공간 운영과 동네주민들을 대하는 정신적 근간과 토대가 저에게 생겨났습니다. 내가 앞으로 아이들과 엄마들, 동네 주민들을 어찌 대해야 할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 등을 오랜 시간 고민하며 말하고 행동하게 만들었죠.


현재 제가 일하고 있는 이곳 주엽커뮤니티센터는 사업 초기 유찰을 2번 겪고, 예산이 경기도로 반납될 상태였어요. 2016년 8월말 고양시민회에서 사업제안을 받았고 고양시민회가 위탁에 선정되어 2017년 8월 1일부터 지금까지 운영하며 어느 덧 7년차가 되었습니다. 시간 참 빠르죠?


주엽커뮤니티센터는 주엽역 지하보도를 리모델링한 주민공간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마을문화예술 거점 공간으로 정착된 곳입니다. 이 공간은 2011년에 주엽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의제 발굴을 하며 주민들이 만들어 달라 시행정에 요청하며 시작된 공간입니다. 보통 시행정에서 공간을 먼저 계획하고 만든 후 주민들에게 공개하는 다른 마을공간들하고는 그 시작이 다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주민들이 먼저 제안한 공간이라 이 공간을 만들어도 유지를 하는데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터라 처음에는 시에서도 난색을 표했어요. 


그래서 주민들은 공간을 시에서 만들어만 주면, 운영비 없이 주민들이 알아서 운영하겠다. 이야기가 돼 공간이 개관되었습니다. 그 후에 현재까지 최소한의 보조만 시행정에서 받습니다. 전기세, 공과금 정도만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자체적으로 운영됩니다. 


그래도 고양시에서는 무턱대고 주민들에게 공간을 운영하라 하진 않았습니다. 수익을 마련할 수 있는 장치를 당시 주민자치과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마련해주었어요. 센터 안에 있는 청년공작소 임대료와 카페 수입, 대관료 등 수익사업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참고로 이곳에 위치한 청년공작소는 공간 한군데에 월 11만을 받습니다. 보증금도 관리비도 없이요. 보통 한 달에 이곳 전기세가 70~80만원 정도 나가니 일 년에 천만원 정도를 시에서 보조하는 셈이죠. 


그리고 저는 시예산에서 따로 인건비를 안 받기 때문에 감사를 받지 않습니다. 다만 그래도 성실하게 사업과 관련해서 운영위와 시행정에 보고를 합니다. 경직된 보고가 아니라 파트너십에 걸 맞는 평둥한 관계에서 말이죠. 그래서 시에서도 일이 있으면 센터에 항상 정중하게 부탁을 한 적은 있어도 강제적으로 무얼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낮은 자세로 관계자들을 대한 적이 없었고, 시행정과 운영자, 주민들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이 마을공간에 형성되었습니다.


이 공간은 10시까지 운영되는데, 제가 없어도 시민들, 이용자들, 동아리들이 알아서 문 닫고 알아서 소등하고 갑니다. 청년공작소는 24시간을 운영하고 있고 지금까지 다행히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다른 마을공간과는 사뭇 다르죠? 이곳에는 운영에도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주민들이 좀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들의 관점에서 운영됩니다. 공간과 시설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저마다 애착과 책임감을 갖고 사용하고 있고, 공간을 관리하는 담당자와 시행정도 주민들을 신뢰하였기에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지금껏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엽역 지하보도에 위치한 주엽커뮤니티센터 모습



■ 주엽커뮤니티센터를 운영하면서 생긴 인상적인 에피소드들이 있나요?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센터에 비치된 꽃이 다 생화입니다. 이 꽃은 모두 인근 주엽동 성당에서 옵니다. 성모님에게 봉헌하는 꽃들이 있는데 이걸 신문지로 싸서 주민들이 센터로 하나둘 들고 옵니다. 누가 시키거나 말한 것도 아닌데 한 분 한 분이 이곳을 조금 더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사소한 것에서부터 신경을 써주십니다. 말 그대로 은혜로운 꽃이죠? 이런 관계와 일들이 저희 센터에서는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이곳에는 정말 다양한 연령의 어린이청소년들도 자주 찾습니다. 아이 중에 기억에 남는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근처 학원을 가기 전에 이곳에 들러 아무 말도 없이 책만 보고 가는 친구였죠. 2년 동안 빠짐없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데리러 온 엄마를 처음 뵈었어요. 오랜 시간 미술사를 전공했던 선생님이셨죠. 그렇게 아이의 엄마와 연결이 되어 이곳에서 2019년부터 3년간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수업을 열었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한 아이의 인연이, 엄마의 인연으로, 또 주민들 사이로 점차 펴져나가는 걸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센터에 방문하는 연인원이 4만 명 정도 되는데 계속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을 데려옵니다. 플랜카드나 별다른 홍보 없이도 말이죠.


개관 초기, 인근 주엽2동행정복지센터가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그곳에서 운영되었던 문화프로그램 중에서 소리가 나는 수업들(노래, 풍물, 댄스 수업 등)이 센터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묵향이 강한 서예수업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고요. 처음에는 주민분들이 화장실도 없다는 등 이런저런 불평불만이 많았는데 점차 오시더니 정이 들었는지 매일매일 오시고 동네곳곳에 소문들을 많이 내셨습니다. 주엽1동 22명의 통장님들도 수업이나 회의 후 항상 커피를 마시려 자주 내려왔습니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주민들분이 민원을 내는 게 아니라, 이 공간을 자신들의 일인 마냥 책임있게 사용하고 또 홍보를 해주셨습니다. 


주민들의 도움으로, 주민들의 의지로 운영되는 곳, 마중물처럼 운영되는 곳, 자생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 센터의 비전입니다. 여러 크고 작은 사연과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비전에 걸맞게 지금까지 운영을 잘 해왔습니다. 


 


■ 마을 공간을 운영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곳은 바로 공간입니다. 공간이 없으면 사람이 모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동네 사람이 주인이 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하는 모든 일은 사업이나 장사가 아닙니다. 이곳 센터에서는 동아리들 공간사용료가 한 시간에 인당 500원입니다. 저 큼직한 공간들을 이용하는데 얼마 들지 않죠. 사실 이 공간을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게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주민들이 공간을 책임감 있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고, 오히려 무료로 사용했을 때 생기는 마음의 부담을 줄이고 싶었습니다. 


기본 이용시간은 2시간으로 보통 천원을 받습니다. 춤을 추는 사람들도,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도 1000원입니다. 일반 주민모임이 아닌 대신 지원사업 등의 모임은 대관료를 더 받습니다. 2시간에 크기와 규모에 따라 3~9만원 정도가 들죠.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면서 동시에 거점이 되려면, 주민들이 책임감 있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문턱이 낮아야 합니다. 




■ 커뮤니티 공간(마을공간)을 운영하기 위해 알아야 할 팁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사용자의 요구를 최대한 받아줍니다. 저희는 외부음식을 환영합니다. 그냥 혼자 와서 공부만 해도 좋고, 책만 봐도 좋고, 커피 한잔을 시켜 둘로 나눠도 오케이입니다. 주민들의 요구는 최대한 수용합니다. 저는 이곳을 이용하는 동아리를 많이 유치하기 위해 최대한 모든 것을 동원했습니다. 주민들이 필요하면 센터의 기자재도 무상으로 꺼내 사용하게 하고 주방도 오픈하고 동아리들의 크고 작은 짐보관도 해주면서요. 돌아보니 사용자의 요구를 받아 주었다기 보단 이 공간 내에서 동아리가 오랫동안 유지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를 많이 썼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만날 수 있도록 센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주민들을 도왔습니다. 



 

■ 올해 7월 말 센터가 위탁종료가 됩니다. 애를 많이 쓰셨는데 아쉽지는 않은지요?


아쉬워요. 일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운 게 없습니다. 다만 매일 찾아오는 주민분들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게 아쉽습니다. 저의 일주일은 이곳에 온 모든 사람들을 이웃으로 만나는 일정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지금 저기 보이는 매일 이곳을 찾는 할머니, 근처 성당분들, 동아리 분들을 다시 못 보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간 선물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집에서 해온 반찬거리, 옥수수 같은 밭작물들, 선물하려 손수 만든 물건들, 좋은 일 있으면 초대를 받거나, 이번에 태어난 손주사진 자랑 등 이런 게 더 이상 없을 거라는 게 제일 아쉽습니다. 


크고 작은 안부를 묻는 동네사람들과 단절되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도 다음에 이곳을 운영하고 고생하실 분들을 위해서도 저 역시 깔끔하게 떠나야 하니깐 저는 그 동안 일해왔던 이 공간에 연연하거나 질척하지 않기로 매번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 이곳에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작별인사가 아닌 감사인사를요. 그래서 요새는 고마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 위탁이 종료된, 앞으로 종료예정인 중간지원조직 실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헤어질 준비가 필요합니다. 위탁이 종료되거나 사업이 끝나는 중간지원조직 실무자들에게는 이 준비와 시간이 정말 중요합니다. 마을에서 수많은 주민들과 만나며 일을 해왔던 실무자들에게는 가깝게 일했던 주민들과 이별할 시간이, 그리고 인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는 실무자뿐만 아니라 가깝게 지냈던 주민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중간지원조직이나 마을공간 실무자들은 스스로와 동료들 뿐만 아니라, 함께 호흡하고 일상을 나눴던 주민들의 마음까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내가 이 공간에서 노력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거웠구나. 좋았구나. 이걸 확인하는 작업이 실무자들한테 필요합니다. 헤어질 준비를 하는 시간, 그리고 그간 일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라는 것을 확인할 시간, 이 시간들이 운영자나 실무자들에게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 실무자들도 다시 한 번 마을에 관심을 갖고 다른 형태로라도 마을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마을을 기반으로 근무했던 실무자들 하나하나가 이미 예산이 많이 투여된 마을의 훌륭한 자원이고 훈련된 활동가잖아요. 이 좋은 자원들이 다른 곳으로 이탈하지 않고 마을에 누적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스스로도, 행정도, 기관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 이제 마을공간의 운영자가 아닌 한명의 덤덤한 주민으로 돌아올 수 있나요?


리셋 하러 저는 떠납니다. 6년 동안 일하다보니 저에게는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습관들이 아주 많이 생겼습니다. 이제 내 삶과 일상은 주엽커뮤니티센터를 빼고 설명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죠. 그래서 저는 다시 여행을 떠납니다. 예전부터 혼자서도 멀리 여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아프리카 케냐 남서부에 있는 마사이마라에 갔다가 인도 북부 라다크(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에 등장하는)로 떠납니다. 여행을 통해 나를 제자리로 돌릴 수 있는 기회를, 동네 아줌마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 충분히 줄 예정입니다. 그렇게 이곳을 잊을 겁니다. 저는 곧 배낭을 메고 이제 혼자서 먼 길을 떠납니다. 다시 정발산동 동네아줌마가 위해.




출처 : 

“나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이제 먼 길을 떠납니다”  < 고양사람들 < 지역 < 뉴스 < 기사본문 - 고양신문 (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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