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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호 Feb 02. 2024

“마을이 아이를 키우듯 어른도 키워내야 합니다”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4) 류희동 사랑방 마을공간 활동가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4) 류희동 사랑방 마을공간 활동가


류희동 사랑방 마을공간 활동가


[고양신문]  전쟁 이후에 태어난 많은 시민들은 전쟁을 말과 글로만 접했지 실제 그 참상이 어땠는지, 전쟁이 개인과 마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금번 사람책 인터뷰는 보훈의 달을 맞아 전쟁이 마을과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국가와 개인들에게 평화란 어떤 의미인지를 가늠하고자 마련하였습니다. 인터뷰는 강선마을 ‘사랑방’에서 마을공동체, 주민자치 영역에서 활동 중인 류희동(81세)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너무나 다른 서로를 잠깐이라도 견뎌야 합니다.
간신히 서로를 배려할 수 있을 때까지요.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공동체와 마을이 좋은 어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42년생입니다. 8살 때 당시 저는 춘천의 조그만한 산골꼬마였어요. 당시 8살이면 요즘 아이들과 달리 완전 어리숙할 때입니다. 딱히 어디서 정보를 얻을 데도, 귀동냥을 할 데도 없던 시절이니. 그때에도 시골에는 양반 상놈 이런 계급이 여전히 조금씩 남아있었어요. 또 마을을 이루고 있던 자연부락 대다수가 집성촌이라 성이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사람들끼리 서로를 차별하고 같은 성씨라도 집안이 잘 사는지에 따라 또 차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쟁(6.25)이 났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았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저희 마을은 교전도 피해가는 깊은 산골이었습니다. 무슨 요충치도 아니고 그렇게 중요한 곳도 아닌 10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별게 없는 산골마을일 뿐이었죠. 그 와중에도 정보에 밝은 사람들, 잘 사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피난을 떠났고 남은 마을주민들은 전쟁기간 내내 늘 두 패로 갈렸던 게 떠오릅니다.


전쟁이 나고 6월이 끝나기 전, 빨간 완장을 찬 사람들이 동네에 와가지고 아이들을 학교에 모아 노래 같은 걸 가르쳤어요. 동네아이들을 모아놓고 뭔지도 모를 노래들을 알려주고 부르게 했습니다. 빨치산 노래, 김일성 장군 노래였던 것 같아요. 공산주의가 무언지 민주주의가 무언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당시 알 수 없었죠.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게 저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당시 글을 읽지 못하거나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으니. 어린 시절 감상으로는 북쪽의 노래들은 그저 씩씩한 노래였습니다. 아마 군가였을테니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켰겠죠.


인민군이 들어왔을 때는 군인들이 동네아저씨 중 젊은 사람에게 빨간 완장 같은 걸 채워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완장을 찬 사람은 항상 지휘봉보다 큰 막대기 같은 걸 들고 다니면서 마을사람들이 말을 안 들으면 마구 패고 다녔던 게 기억납니다. 완장을 찬 사람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무슨 조직 같은 걸 만들었어요. 


빨간 완장의 사람들은 사람들의 손을 보고 굳은살이 배기면 노동자라고 하여 우리 편이라 부르고 다녔는데, 돈 좀 있고 일 안하는 사람들은 혹시나 해코지 당할까 무서워 틈만 나면 땅바닥에 연신 손을 비벼댔던 게 기억나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요.


국방(남한)군이 다시 밀고 올라왔을 당시 사람들이 학교에 많이 몰려들었는데 머지않아 비행기가 학교를 폭격했어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당시 학교에 있던 사람들은 인민군들이었던 것 같아요. 동네 사람들은 비행기소리만 들리면 무조건 근처 움막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딱히 몸을 가리거나 피할 데가 없던 시절이니까요. 움막이라고 해봤자 집 뒤 편 산자락에 김칫독 같은 걸 묻어놓았던 창고 같은 곳이었죠.


그렇게 국방군이 밀고 들어왔을 때 여기저기 산 속에 숨어있던 몇몇 아저씨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막대기 같은 걸 들고 인민군이 준 완장을 차고 다녔던 사람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렇게 북한에 부역한 사람들을 끌고 갔는데, 나중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면사무소에 모아 부역정도에 따라서 즉결처분을 했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가족이 끌려 간 몇몇 집들은 아무 말도 못했어요. 너무 무섭기도 했고 혹여 남은 가족들에게 문제가 생길까봐. 그래도 그 때 죽은 가족 시체를 찾겠다고 새벽에 남은 가족들이 나서기도 했다는 소문도 들렸고, 또 그렇게 찾은 시체를 아무도 몰래 조용조용 장례를 치렀다는 소문도 여러 번 들렸습니다.


인민군이 내려오고 국방(남한)군이 올라오고 다시 중공군이 또 내려오고 그걸 되찾는 일이 반복되면서 단순히 전선이 바뀐 게 아니라, 당시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살아가는 사회질서와 세계관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주민들의 삶을 지배하는 규칙과 룰이 계속 바뀌어가며 그 때마다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갔습니다. 


어느 군대이든 군대가 점령한 지역은 이웃들이 서로를 고발하면 사실여부를 제대로 검증 하지 않고 당시 군인이나 경찰 등 책임자들이 주민들을 처형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군인들이 총을 쏘는 전쟁을 피부로 겪고 눈으로 목도한 시민들 보다는 마을과 지역의 주민들이 서로를 고발하고 죽음으로 내몬 비참한 일들을 더 많이 지켜 보았을겁니다.


그 시절에는 항상 서로의 눈치를 보고 서로를 믿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 개인들과 소수들은 무서워서 항시 집단들을 피해 다녔죠. 어린 시절의 시선으로 보면 누가 옳고 그른지,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상관없이 양쪽 다 하는 일들이 똑같았습니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찾아서 죽이고 배제하고. 그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던 게 지금도 가슴 한편에 남아있습니다. 그 친구가 어느 쪽을 지지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너도 죽어야 해.”


공산주의자가 무언지도 모르고 완장을 채우니 공산주의자가 되고 그 반대 상황도 많았는데, 이렇게 죽은 사람들이 아마 군인들보다 더 많았을 겁니다. 지금도 고향에 돌아가면 동창회같은 걸 저도 합니다. 저 같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부모에 대한 이야기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습니다. 시골에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절대 이런 이야기를 안 할 겁니다. 혹시나 친구의 가족이 혹은 내 가족이 누구를 죽였거나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죽임을 당했는지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 유년시절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어른들에게 전쟁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저는 전쟁이 없으면 좋겠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깊게 생각하는 것을 자꾸 피했습니다. 그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게 여전히 버겁습니다. 돌아보니 무수한 일반시민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정치를 하는 최고의사결정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러니 정치인들은 결코 서로 합쳐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의식이 더 깨어나고 성숙해지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운동은 반전쟁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시민들의 의식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이 인간의 도리가 아닌 편견과 욕심에 더 치우칠 때, 이를 기반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명분과 힘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전쟁이 우리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전쟁에는 승리자가 없습니다. 어느 한쪽의 피해가 더 크냐 적으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가장 큰 피해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피해입니다. 전쟁을 겪으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달라집니다. 죄책감이든 죄악감이든 전쟁을 겪으면 사람들의 의식이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를 친구와 이웃이 아닌, 적으로 인식하고 평생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황폐하겠어요. 최근은 정당활동을 하는 정치인들이 서로의 공존을 모색하기보단 같은 국민인데도 불구하고 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런 인식이 최근에는 지역의 마을공동체, 주민자치에도 많이 투사된 것 같아요. 자꾸 옳고 그름에 치우치면 결국 주민들의 삶은 계속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 국가단위의 커다란 전쟁이나 재해, 참사가 발생했을 때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편협한 생각이 없을 때, 순수한 공동체로 살아갈 때는 가난한 마을주민이 결혼을 하면 십시일반 사람들이 먹을 거를 내어놓고 잔치를 했어요. 누구는 야채 한 다발, 누구는 국수 조금, 누구는 옷감 조금 등등. 제가 예전에 무허가 난민촌에 살았을 때, 대홍수가 나서 개천 옆에 있던 집들이 크게 침수되었는데 그 때만해도 그 여력 없는 사람들이 자기가 입던 옷을 하나씩 나눠주고 살림살이도 조금씩 보태며 그 어려움을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에는 공동체를 위한 측은지심이 싸악 없어진 것 같아요. 이게 사회와 마을의 기초인데. 그럼에도 아직 사람들에게 이 공동체를 위한 선의와 호의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생각하는데 이마저도 최근에서 정치권에서 자신의 세력으로 삼기위해 소진시키거나 반대로 지우려고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지역의 공동체성은 온전히 그 마을 주민들의 삶을 위한 일이지 누군가의 권력을 창출하거나 유지하는데 쓰여서는 안됩니다.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환란이 닥쳤을 때 인간에 대한 선의와 호의를 잃지 않고 내 가족과 내 이웃들을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 될 꺼라 생각합니다.



경기도 따복사랑방 개소식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류희동 어르신



■ 평화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마을주민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마을 간에, 도시 간에, 국가 간에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지금 일어나는 국가 간 전쟁과 갈등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을과 지역에 시민의식과 주민공동체가 얼마나 부재한지를 가늠할 수 있겠죠. 주민 사이사이에 켜켜이 쌓아 있어야 할 정, 배려, 공동체성이 회복되거나 복원되지 않으면 절대 어떠한 과정과 방식으로도 평화는 올 수 없다 생각합니다.




■ 개인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야 근본적으로 평화롭지 않을까요? 부모가, 선생님들이, 어른들이 아이를 인간으로 대하는 시대가 와야 서로의 관계가 복원될 것 같아요. 요즘에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출세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것인가? 라는 이야기가 넘치잖아요. 물론 돈 벌고 잘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겠어요. 그러나 이런 고민보다는 인간이 인간을 수단이 아닌 본질로 대해야 우리가 조금 더 평화로울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공동체경험, 정치경험, 인문과 철학 경험 등을 제공할 때는 하나의 경험, 하나의 선택지만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른들이나 제공자가 자신의 경험과 효용에 맞춰서 아이들에게 정해진 경험과 선택지를 제공하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지와 선택지를 제공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주민자치회 교류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지역과 마을단위에서 시민들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욕심 같아서는 내 욕심을 줄이고 이웃을 배려하였으면 좋겠는데 아직 방법론에 대해서는 지금도 저 역시 고민중입니다. 이 나이를 먹어도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서로를 향한 존중, 인정 전부 다 좋은 말이죠. 저는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기 이전에 시민들이 서로의 존재를 참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너무나 다른 서로를 잠깐이라도 견뎌야 합니다. 간신히 서로를 배려할 수 있을 때까지요. 그렇게 간신히 참고 간신히 배려해야합니다. 서로가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마을에 좋은 어른이 한명이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사회에는 울림있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공동체와 마을이 좋은 어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 아이도 어른도 그렇다면 결국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마을이 그리고 공동체가 사람을 만드는 거였군요.





출처 : [고양신문]사이트 나경호의 사람도서관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7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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